불안감. 2009년 한국 사회를 누르고 있는 회색 덩어리는 바로 이것이다. 회사가 망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이번에 나갈 사람이 하필 내가 될지도 모른다는 걱정, 그리고 까딱하다간 내가 파산할 수도 있다는 스트레스가 사회를 휘감고 있다. 살아남을 수 있을지를 걱정해야 하니 몸은 고단하고 마음은 산란하기만 하다. 아직까지 별 영향을 못 느끼는 사람도 이런 분위기를 실감할 날이 머잖았음을 잘 알고 있다. 거리엔 취객이 줄었고 시장엔 상인들이 더 많다.

이 불안감을 월급쟁이들이 떨치기란 쉽지 않다. 그들이 할 수 있는 선택이라야 외식 줄이고, 걸어다니고, 절약하는 방법뿐이다. 집값도 떨어지고 상대적으로 빚은 더 늘었으니 이런 방식으로 고통의 다리를 건널 수 있어야 미래를 도모할 수 있음을 잘 알고 있다. 뼈빠지게 일한 결과가 이것뿐이라니. 절망감도 깊어간다.

그러나 지금 우리가 겪고 있고 '할 수 없이' 선택하는 내핍이 사실은 우리의 성장 원천이었다. 지난주 방한했던 호아킴 데 포사다 박사가 전한 메시지도 그것이다. 한국에서만 350만부가 팔린 최고의 자기계발서 '마시멜로 이야기'의 저자인 그는 우리 부모들이 선택했던 내핍이 바로 한국 성장의 원동력이었다고 강조했다. 개인들은 돈을 벌어 열심히 저축했고, 회사들도 다시 새로운 비즈니스에 투자했다.

마시멜로의 모티브는 스탠퍼드대학에서 열린 심리학 실험에서 나왔다. 4살짜리 아이에게 달콤한 마시멜로를 주고 15분만 참으면 하나 더 주겠다고 했을 때 600명 아이 가운데 400명이 참지못하고 먹어치웠다는 것이 마시멜로 실험의 골자였다. 15년 뒤 추적조사를 해봤더니 마시멜로의 유혹을 참아낸 아이들이 모두 성공적인 인생을 살고 있었다는 것이 뒷 얘기다. 다 먹어치우지 않고,미래를 위해 지금의 유혹을 늦출 줄 아는 것이야말로 성공의 가장 원초적인 비결이라는 것이 포사다 박사의 메시지였다.

이 단순하고도 평범한 얘기가 세계적인 초대형 베스트셀러가 된 비결은 무엇일까. 오히려 그 평범함의 가치가 새롭게 빛을 발할 정도로 세상이 바뀐 것은 아닐까. 포사다 박사는 "이렇게 평범한 진리를 실천하는 사람이 적기 때문에 자기 규율을 갖고 절제할 수 있는 사람들이 크게 성공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마시멜로라는 화두는 회사에도 적용될 수 있다. 인터넷과 이를 통해 더욱 가속화되는 글로벌 환경에서 과거의 대기업들이 기회를 눈뜨고 놓치고 신생업체들이 기회를 잡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대기업들이 과거의 성공에 안주하면서 눈앞의 마시멜로를 다 먹어치운 것이 치명적으로 작용했다. 나라도 예외일 수 없다. 선진국 문턱에서만 20여년, 우리는 미래를 위해 남겨둔 마시멜로가 하나도 없었던 건 아닐까.

'마시멜로 이야기'에 담긴 유명한 얘기.

"아프리카에선 매일 아침 가젤이 잠을 깬다. 가젤은 제일 빠른 사자보다 더 빨리 달려야 살아남을 수 있음을 잘 알고 있다. 매일 아침 사자도 잠이 깬다. 사자는 제일 느린 가젤보다 빨리 달려야 굶어죽지 않는다는 걸 잘 알고 있다. 가젤이건 사자건 아침에 해가 뜨면 달려야 한다. "

잘 사는 사람이건 못 사는 사람이건 달려야 한다. 생존이 최고의 가치인 시대,생존할 수 있어야 성공 가능성이 남는 시대를 우리는 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