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시가 2일 급락하면서 지난해 10월처럼 코스피지수 1000선이 다시 무너질 것이란 불안에 휩싸이고 있다. 미국과 유럽의 금융위기와 이에 따른 환율 불안, 외국인의 매도 공세 재연 등 온갖 악재들이 시장을 전방위에서 압박하고 있는 형국이다.

일부 외국계 증권사들은 올해 코스피지수가 연말까지 1000선 아래에서 머물 것이란 비관론까지 내놓고 있다.

하지만 상당수 분석가들은 당분간 시장은 변동성이 확대되면서 불안한 움직임을 보이겠지만 한 달 사이에 코스피지수가 40%가량 폭락했던 지난해 10월과는 상황이 다르다는 점을 고려해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다. 당시에는 외국인 투자자들이 글로벌 증시에서 무차별적으로 주식과 채권을 내다팔아 자금을 회수했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다는 설명이다. 소재업종의 가동률이 최근 회복세를 보이는 등 급전직하하던 경기지표도 일부 긍정적인 신호가 나타나고 있다는 분석도 있다.

이에 따라 코스피지수가 1000선 부근에서 바닥을 다지며 점진적인 반등 기회를 찾을 것이란 희망 섞인 관측이 여전히 많다.

◆환율 · 외국인 매도 작년 10월과 비슷

글로벌 금융위기의 근본적인 해법이 여전히 오리무중이라는 답답함이 시장을 짓누르고 있다. 최근엔 동유럽 국가들의 부도 우려에서 보듯 미국발 위기가 유럽으로 전이되면서 불확실성이 오히려 더 커지는 양상이다. 지난해 9월 리먼브러더스의 파산과 AIG에 대한 구제금융 등으로 위기감이 고조됐다가 10월에 증시가 급락했던 것과 비슷한 상황이다.

성진경 대신증권 시장전략팀장은 "씨티 등 미국 상업은행의 국유화,제너럴모터스(GM)의 파산 가능성, 동유럽 국가의 부도 위험,국내 외화유동성 부족 우려 등 최근 악재가 줄줄이 불거지면서 위기감을 키우고 있다"며 "이번에도 대응 방안이 일시적 미봉책에 그친다면 다시 롤러코스터 장세가 되풀이될 수 있다"고 진단했다.

원 · 달러 환율 급등은 이 같은 우려를 뒷받침하는 대표적인 불안 요인이다. 작년 10월 초 1200원대였던 환율은 단숨에 1400원대까지 치솟으면서 증시 급락의 도화선 역할을 했다. 최근 한 달 새 환율이 1400원 수준에서 1600원 직전까지 급상승한 것과 유사하다.

외국인이 지난달 10일부터 15일 연속 주식을 순매도하고 있는 것도 불안 요인이다. 외국인은 지난해 10월 한 달간 유가증권시장에서 4일만 순매수하고 전부 '팔자'로 일관했다.

코스피지수가 1000선에 근접했지만 아직 주가 수준이 충분히 싸지 않다는 점은 추가 하락 가능성을 열어 놓고 있다는 지적이다. 대신증권에 따르면 지난 2월 말 주가로 올해 실적 기준 코스피지수의 주가수익비율(PER)은 12.3배로 중국(10.3배) 인도(10.2배) 이머징 평균(9.6배) 등보다 높다. 지수 하락보다 기업 실적 전망치의 하락 속도가 더 빨랐기 때문이다. 성 팀장은 "신흥시장 평균 PER를 적용하면 적정 코스피지수는 835 수준"이라며 "한국 증시가 신흥시장 평균보다 20% 이상 고평가됐다는 점은 지수가 1000선 아래로 떨어져도 저평가 매력이 크게 부각되기 어렵다는 뜻"이라고 설명했다.

정부의 부양책 외에는 뚜렷한 호재를 찾기 어려운 것도 작년 4분기 장세와 비슷하다. 김학균 한국투자증권 연구원은 "기댈 언덕이 없는 시장 참여자들이 정부의 대책만 바라보고 있는 것도 지난해 10월과 비슷한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박스권 하단 지지력 강해

그렇지만 지수가 1000선 근처에서 지지력을 확인할 것이란 긍정적인 전망도 많다.

우선 시중 유동성이 풍부해 기업 자금 사정에 여유가 있다는 점이 작년과 다르다는 설명이다. 작년 하반기처럼 현금 확보가 비상인 상황은 넘겼다는 것이다.

김성주 대우증권 투자전략팀장은 "지난해 10월 급락장에서는 흑자 기업도 도산할 수 있다는 위기감이 팽배했지만 지금은 이러한 리스크가 없어 당시처럼 무차별적인 자산 매각으로 차입금을 축소하는 과정이 되풀이되지는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지난해 무차별적인 급락세와 달리 올 주가는 선진국보다 선방하는 등 하락 과정이 달라 박스권 하단의 지지 가능성이 높다는 분석이다. 김 연구원은 "뉴욕 증시의 경우 헬스케어 전기전자 통신 등의 업종은 작년 10월 말 저점보다 10% 이상 주가가 올랐다"며 "금융주 비중이 낮은 신흥국 증시가 선진국보다 덜 하락했다는 것은 시장이 금융주와 비금융주를 다르게 보기 시작했다는 의미"라고 진단했다.

작년 10월에는 외국인의 순매도가 4조6000억원이나 됐지만 올해는 지난 2월 한 달간 매도 규모가 8600억원 수준으로 크게 줄어든 것도 달라진 모습이다.

김세중 신영증권 투자전략팀장은 "우리나라의 부도 위험을 나타내는 신용부도스와프(CDS) 프리미엄은 지난해 10월에 비해 훨씬 낮은 수준이어서 지나친 비관론은 금물"이라며 "1000선이 무너질 수는 있지만 일시적인 현상에 그칠 것"이라고 강조했다.

박해영 기자 bon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