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조직이나 양지가 있으면 음지도 있기 마련이다. '엄친아'와 '부친남'이 있으면 그렇지 못한 채 속앓이를 하는 사람이 존재하는 건 당연하다. '마음만 먹으면 나도 엄친아나 부친남이 될 수 있다'고 자위해 보지만 그것만으론 '엄마'나 '부인'의 구박에서 벗어나기는 힘들다.

그렇다면 직장인들이 생각하는 엄친아나 부친남의 조건은 무엇일까.

여론조사업체인 엠브레인이 직장인 658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출중한 외모 및 철저한 자기관리'가 27.9%로 가장 많았다. 비단 출세가 빠른 사람만이 아니라 인기가 좋은 사람도 엄친아로 간주되고 있는 풍토 때문으로 분석된다.

이어서 '뛰어난 업무능력'을 엄친아의 조건으로 꼽은 사람도 27.6%로 많았다. 뭐니뭐니해도 일을 잘해야 그만큼 인정받는다는 점을 직장인들은 인식하고 있는 셈이다.

'상사와의 친화력'이라고 응답한 사람도 17.4%에 달했다. 사내에서 잘나가는 사람이 갖춰야 할 조건이 무엇인지를 엿보게 하는 대목이다. 또 '동료 및 아랫사람과의 친화력'을 엄친아 조건으로 꼽은 사람도 15.9%를 차지했다. '음주나 각종 잡기에 능해야 한다'는 대답은 11.2%에 그쳤다.

사내 엄친아를 대할 때 직장인들은 어떤 생각을 할까.

전체의 52.7%는 '솔직히 질투난다'고 답했다. 요즘처럼 어려울 때 자리걱정하지 않고,가정에서 어떤 타박도 받지 않고 다니는 사람을 보면 질투가 나는 건 어쩌면 당연하다. 반면 '전혀 신경쓰이지 않는다'는 사람도 26.1%에 달했다. 남이야 잘나가든 말든,내일을 묵묵히 한다는 직장인도 상당한 것으로 해석된다.

'그저 부럽기만 하다'는 사람도 20.2%를 차지했다. '이들을 몰래 헐뜯거나 험담을 늘어놓는다'는 사람은 1.0%로 예상보다 적었다.

그렇지만 경제위기가 길어지면서 가슴앓이를 하는 직장인도 늘어나고 있다.

특히 처음 위기가 닥쳤을 때만 해도 함께 자리 걱정을 해주던 부인들이 은근히 부친남을 들먹이며 신세타령을 늘어 놓는 게 참기 힘들다는 사람이 많다. 물론 부인들도 남편 눈치를 본다. 그렇지만 "이 불경기에 친구 남편은 임원으로 승진했다더라"거나 "의사를 남편으로 둔 친구는 아이들 과외비를 두배로 올렸다더라"는 식으로 한두 마디 내뱉는 말이 월급쟁이들에겐 뼈아픈 상처로 자리잡는 것으로 나타났다.

하영춘 기자 hayou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