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국제강의 조선용 후판(厚板) 가격이 근 3년 만에 포스코 제품 수준으로 떨어졌다. 원자재를 수입해서 제품을 만드는 업체와 원자재를 100% 자체 생산하는 기업의 제품 가격이 같아진 것은 이례적인 일이다.

동국제강은 2일 조선용 후판 값을 종전 t당 116만원에서 포스코 제품과 동일한 92만원으로 24만원 내린다고 발표했다. 포스코와 동국제강의 후판 값이 같아진 것은 2006년4월 이후 2년11개월만에 처음이다.

동국제강은 그동안 후판을 만드는 원자재인 슬래브의 수입 가격이 하락한데다 중국 등 일부 신흥국의 ‘덤핑 공세’가 이어지면서 조선업체들로부터 가격 인하 압력을 받아왔다.

동국제강은 지난 1월에도 후판 값을 t당 25만원 인하했다. 올 들어서만 후판 값을 두 차례에 걸쳐 35% 가량 내린 셈이다.

일반적으로 동국제강 등 ‘용광로’가 없는 철강업체들은 후판을 만들기 위해 중간재인 ‘슬래브’를 외국에서 수입한다.슬래브를 전량 자체 조달하는 포스코 등 ‘고로 메이커’에 비해 원가가 더 들어갈 수 밖에 없는 구조다.

그러나 최근 들어 상황이 바뀌었다.자동차 전자 건설 등 주요 철강 소비산업의 경기가 확 꺾이면서 철강 수요가 대폭 감소했다.

무턱대고 용광로를 끌 수 없는 철강 업체들에는 비상이 걸렸다. 용광로는 식혔다가 다시 사용할 수 있는 설비가 아니다. 한 번 불이 꺼지면 폭파시키는 게 일반적이다. 용광로 내부에 철광석이 눌러 붙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생산성이 떨어지는 철강회사들은 대대적인 ‘세일’을 해서라도 재고를 처리해야 하는 절박한 상황에 몰렸다. 브라질과 러시아 등의 철강사들이 여기에 속하는 대표적인 케이스다. 동국제강이 사다 쓰는 수입 슬래브의 가격이 급락하고 있는 이유다.

신일본제철 등 세계 주요 ‘고로 메이커’들이 다음달부터 일제히 후판 가격을 내릴 것이라는 전망도 동국제강에는 부담으로 작용했다. 신일본제철과 JFE 등 일본 철강회사들은 지난 달부터 한국 조선회사들과 t당 700달러 선에서 가격 협상을 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작년 평균 도입 비용에 비해 20~30% 정도 낮은 가격이다.

동국제강 관계자는 “슬래브 국제 시세가 떨어지긴 했지만 원·달러 환율이 높아져 여전히 원가 부담이 크다”며 “하지만 경제위기의 고통을 분담한다는 차원에서 후판 가격을 예정보다 한 달 빨리 내리기로 결정했다”고 설명했다.

한경닷컴 안재석 기자 yagoo@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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