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 문화를 연구하는 학자들은 역사상 최초의 와인이 이란 서부지역 자그로스산맥 인근에 살았던 사람들에 의해 대략 기원 전 6000년 경 만들어졌을 것으로 추정한다.

그러나 당시에 만들어진 것은 와인이라고 하기에는 맛도 아주 씁쓸했을 뿐 아니라 알코올 성분도 낮아 포도즙 수준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했다.

한 가지 흥미로운 점은 이런 초기의 거칠고 투박했던 와인이 오늘 날 우리가 마시는 세련된 수준에 이르기까지는 기독교의 전폭적인 지원에 힘입었다는 사실이다.

'나는 참 포도나무요 내 아버지는 농부라….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이니,저가 내 안에,내가 저 안에 있으면 그는 많은 열매를 맺나니,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 것도 할 수 없음이라'라는 성경 구절만 봐도 포도나무는 처음부터 기독교와 밀접한 관계가 있다.

그러나 와인이 지금의 위치에 있게 된 것은 전적으로 로마가 원정기간 동안 자신들의 점령지에 포도나무를 심고 와인 제조기술을 전수한 덕분이다. 로마는 AD 50년 경 골루아(Gaullois)족이 살던 지금의 프랑스에 포도원을 조성해 원정 중인 군사들이 오염된 물 대신 와인을 식수로 마실 수 있도록 했다. 특히 와인 생산기술은 로마에 의해 주도된 기독교의 전파와 함께 빠르게 전 유럽으로 퍼져나갔다. 로마는 프랑스뿐만 아니라 독일,영국,아일랜드에 수도원을 설립하고 수도승들을 파송했다. 이때,와인은 기독교를 상징하는 음료로 포도를 재배하고 와인을 만드는 일은 교회의 전폭적인 지원을 받았다.

포도나무는 겨울이 되면 고동색 가지만 앙상하게 남아 죽은 듯이 보이지만,이듬해 봄에는 어김없이 새싹을 틔우는 모습에서 '신의 부활'을 연상시킨다. 또한 와인은 '신의 피'를 상징하는 성스런 음료로,교회 예배나 수도원 미사 같은 의식에서 빠질 수 없는 필수품이다. 따라서 충분한 와인을 확보하는 것은 수도원의 중요한 책무였으며,와인 생산기술의 괄목할 만한 성장도 샴페인을 만든 동 페리뇽 같은 수도승들의 헌신적인 노력에 힘입은 것이다.

당시의 수도승들은 수도에만 전념하는 것이 아니라 수도원에서 필요한 비용을 자체적으로 조달하는 책임이 있었는데,와인도 예외가 아니었다. 따라서 와인의 공급은 전적으로 주교의 책임이며 작황이 좋지 않거나 부족하면 큰 곤란을 겪었다. 수도승들은 와인의 질과 수확량을 높이기 위한 기술개발이나 포도품종연구에 많은 시간을 할애하고 노력했다. 그들에게는 모든 것이 갖추어진 상황에서만 기도할 여유가 있었으며, 열심히 일하는 것 자체가 하나님께 봉사하는 것이란 신념도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