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유럽의 현 상황은 1997년 아시아 외환위기와 2001년 아르헨티나의 국가부도가 한꺼번에 밀려드는 형국이다. " 영국 시사주간지 이코노미스트는 19일 '다뉴브강의 아르헨티나?(Argentina on the Danube?)'라는 기사를 통해 폴란드와 헝가리 등 동유럽 국가들이 처한 도미노 디폴트(채무불이행) 우려의 충격을 이같이 표현했다.

1989년 옛 소련 붕괴 후 서유럽 선진국들의 자본 유입에 힘입어 고속 성장을 해온 동유럽 국가들은 유럽연합(EU) 가입을 계기로 서유럽을 따라잡아 유럽 통합의 새로운 주인공이 되겠다는 '유러피언 드림(European Dream)'을 키워왔다. 하지만 글로벌 금융위기의 충격은 동유럽 지역을 옥죄면서 디폴트의 함정으로 점점 몰아넣고 있다. 지난해 동유럽엔 670억달러의 외국자금이 유입됐지만 올해는 610억달러의 순유출로 돌아설 전망이다.

동유럽 지역으로 지칭되는 주요 나라들로는 위치상으로 △유럽대륙 중부에 있는 폴란드와 체코 헝가리 슬로바키아와 △발트해 연안의 발틱 3국(에스토니아 라트비아 리투아니아) △동남부 유럽 3개국(루마니아 불가리아 크로아티아) △우크라이나와 그루지야 등 옛 소련 국가 등이 있다.

서유럽과 러시아,아시아의 경계를 이루는 이 지역은 그동안 '유럽의 변방','유럽의 오지' 취급을 받으며 수백년 동안 외세의 침입에 시달려왔다. 13세기 중엽엔 몽골제국의 침입으로 거의 초토화됐었고,그 후 20세기 초에 이르기까지 오스만투르크 제국과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지배 하에 있었다.

제1차 세계대전이 끝난 뒤에야 비로소 독립국가로서의 체제를 정비하기 시작했지만 2차 대전 후 소련의 위성국가로 편입,공산화의 길을 걸으며 정치 및 경제 시스템이 서유럽 국가들에 비해 상당히 뒤떨어지게 됐다.

동유럽이 새롭게 주목받기 시작한 시기는 바로 옛 소련 해체를 전후해 민주화와 시장경제체제 도입이 활발히 진행되는 무렵이었다. 헝가리의 경우 1956년 사회주의 체제와 소련군 주둔에 반대하는 대규모 민중항거가 일어나며 동유럽의 민주화 시도를 촉발시킨 후 1990년 민주정권이 들어섰다. 체코는 1968년 소련에 대항해 민주화 운동을 벌였던 '프라하의 봄' 이후 1989년 '벨벳 혁명'으로 평화적인 민주정부 수립에 성공했다.

민주화를 이룬 동유럽 국가들은 앞다퉈 사회주의에서 자본주의로의 경제체제 전환을 서두르며 국영기업의 민영화를 위한 구조개혁과 서방 세계의 선진기술 도입에 나섰다. 하지만 옛 소련의 정치적 압박 하에 오랫동안 공산주의에 입각해 경직된 사회시스템을 유지해온 동유럽엔 경제 개혁에 필요한 자본축적이 절대적으로 부족했다.

동유럽 국가들은 자본 조달을 위해 국제통화기금(IMF)과 서유럽 선진국들에 손을 벌렸다. 헝가리와 라트비아는 지난해 11월 IMF의 자금 지원을 받았다. 루마니아는 1991년부터 2006년까지 15년에 걸쳐 IMF로부터 총 7번이나 구제금융을 지원받았다.

이런 외자를 바탕으로 1989~1998년까지 연평균 1.1%에 불과했던 동유럽 국가들의 성장률은 2007년에 이르러선 4~6%대로 뛰어올랐다. 아울러 2004년 5월 동유럽 지역 10개국(폴란드 헝가리 체코 슬로바키아 슬로베니아 리투아니아 라트비아 에스토니아 키프로스 몰타)과 2007년 불가리아와 루마니아의 EU 가입은 변방 탈출의 꿈이 실현될 가능성을 한층 높여줬다.

하지만 EU 편입은 지난해 터져나온 글로벌 금융위기와 맞물려 동유럽에 새로운 시련을 안겨주고 있다. 우선 오랜 세월 쌓여온 서유럽과 동유럽 간의 문화적 갈등이 EU라는 한지붕 아래 살게 되면서 증폭되고 있다. 동유럽 내에서 사용되는 언어만 11개에 달하며,종교도 가톨릭과 개신교,러시아정교와 이슬람교에 이르기까지 다양하기 때문이다.

동유럽 국가들의 낙후된 정치 및 경제 시스템이 EU가 요구하는 수준을 쫓아가지 못하는 것도 큰 문제다. 막대한 외채와 재정적자로 EU의 유로화 도입 기준을 충족하지 못하는 게 대표적 사례다. EU에 가입한 동유럽 12개국 중 유로화를 사용하는 유로존에 가입한 나라는 아직까지 슬로바키아와 슬로베니아뿐이다. 정치 불안도 가중되고 있다. 라트비아의 중도우파 연립정권인 이바르스 고드마니스 총리 내각은 20일 경제위기에 대한 책임을 지고 총사퇴하는 사태를 빚었다.

한편 동유럽 디폴트 위기에 따라 EU 역내 경제 상황이 크게 악화될 것으로 전망되면서 한국의 대(對) EU 수출에도 악영향을 끼칠 것으로 우려된다. 지난해 EU 27개 회원국들에 대한 한국의 수출은 568억1600만달러로 전년보다 5% 증가하는 데 그쳤다. 현재 EU 수출 비중은 전체의 13.8%를 차지하고 있다.

이미아 기자 mi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