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일 원.달러 환율이 석 달 만에 1,500원을 넘어서면서 외환시장이 불안에 휩싸이고 있다.

외환시장 전문가들은 국제금융시장 불안과 외국인의 증시 이탈, 경상수지 적자 등 대내외 악재의 여파로 환율 상승세가 지속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일부에서는 지정학적 문제와 외화 유동성 부족 등으로 1,600원을 향한 급등세를 보일 것이라는 관측도 내놓고 있지만 외환당국의 시장 안정 노력 등으로 1,500원대에서 오름세가 진정될 것이라는 견해가 지배적이다.

◇ 환율 석달만에 1,500원 돌파

이날 서울 외환시장에서 원.달러 환율은 장중 1,507.00원까지 치솟은 뒤 1,500원 선 초반에서 거래되고 있다.

환율이 1,500원대에서 거래를 마치면 작년 11월25일 이후 석 달 만에 1,500원대를 기록하게 된다.

지난 10일 이후 9거래일간 상승폭은 120원에 육박하고 있다.

원화는 엔화에 대해서도 약세를 보이고 있다.

원.엔 환율은 이날 100엔당 1,600원에 근접하면서 1991년 고시환율 집계 이후 최고치에 다가섰다.

외국인의 주식 매도세가 원화 약세를 초래하고 있다.

코스피 시장에서 외국인은 지난 달 28일 이후 9거래일간 주식을 약 1조6천억원 이상 순매수했지만 이달 10일 이후로는 9거래일간 1조3천억원 이상 순매도하면서 주가 급락과 환율 급등을 부채질하고 있다.

해외 주가 급락으로 투신권의 환위험 헤지분 청산과 관련한 달러화 매수세가 유입되는 점도 환율 상승을 뒷받침하고 있다.

GM대우가 산업은행에 1조원가량 자금 지원을 요청하는 등 유동성 위기에 시달리는 데다 무디스의 국내 은행 신용등급 강등과 우리은행의 외화 후순위채권 조기상환 포기를 전후해 은행권 신용 위험이 커진 점도 원화 약세 요인이 되고 있다.

◇ 추가 급등 제한 전망

외환시장 전문가들은 미국과 유럽 금융시장 불안 등 대외 악재와 경상수지 적자 등 국내 수급 문제가 겹친 상황이어서 환율 상승세가 한동안 지속될 것으로 예상했다.

다음 달 대외 배당금 지급이 본격화되면 경상수지 적자가 심화될 수 있다는 관측이다.

조선사의 수주 취소 가능성도 경상수지를 악화시킬 수 있는 요인이다.

박용하 산은경제연구소 구미경제팀장은 "안전자산을 좇아 국내 주식을 팔아치우고 달러를 매수하려는 송금 수요가 가세해 원화 가치를 낮추고 있다"며 "역외세력 등 시장참가자들의 상승 기대심리가 형성돼 있어 환율이 1,500원을 상향 돌파하면 1,550원까지도 상승할 수 있다"고 분석했다.

일각에서는 북한의 미사일 발사와 관련한 한반도 내 지정학적 위기감이 겹치면 1,600원 등 새로운 고점을 향한 급등세가 진행될 우려도 있는 것으로 관측했다.

반면 9거래일째 국내 주식을 팔아치운 외국인이 추가로 대규모 주식 매도에 나서지 않는다면 1,500원대에서 급등세가 진정될 것이라는 예상도 나왔다.

기업들이 실적악화로 배당을 크게 줄일 가능성이 있고 외국인 지분율이 30% 이하로 떨어진 만큼 환율에 미치는 영향이 크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다.

시장이 심리적공황(패닉)에 빠지는 것을 막으려고 외환당국이 1,500원대에서 개입을 강화할 것이라는 견해도 나왔다.

윤증현 기획재정부장관과 이성태 한국은행 총재는 전날 잇따라 지나친 쏠림으로 환율이 급등한 경우에는 이를 완화하기 위해 노력하겠다고 밝혔기 때문이다.

SK증권 염상훈 이코노미스트는 "원화가치가 폴란드나 헝가리 등 동유럽 통화들보다 약세를 보이는 것은 오버슈팅(단기과열)에 따른 것으로 보인다"며 "외환당국이 달러화 매도개입을 통해 1,500원대에서 추가적인 급등을 제한할 것으로 보여 1,550원을 넘기 어려울 것"이라고 예상했다.

(서울연합뉴스) 최현석 기자 harrison@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