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율이 다시 치솟고 증시마저 급락세로 돌아서면서 기업들이 짙은 불안감에 휩싸이고 있다. 수출 부진 및 내수 위축을 타개하기 위해 백방으로 뛰고 있는 상황에서 금융시장 교란이 심화될 경우 경영난이 가중될 수밖에 없다는 우려에서다. 기업들은 특히 환율 급등으로 요동치는 외환시장 동향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삼성전자 관계자는 17일 "지난해 4분기 평균환율이 상당히 높았는데도 1조원에 가까운 영업손실을 입은 이유는 실물 · 금융시장의 총체적인 붕괴 때문"이라며 "외환시장이 안정되지 않으면 경영 안정성을 확보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종전까진 환율 상승이 수출업체들의 채산성을 호전시키는 효과가 강했지만,지금처럼 시장이 불안한 상황에선 수출 자체를 늘리기 어렵고 원화 가치 추락에 따른 국제신인도 하락 부담까지 안을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최근 환율이 급등한 것은 북한 미사일과 미국 제너럴모터스(GM)의 파산 신청 가능성 등 대외 악재가 작용한 측면이 강하지만,문제는 이런 성격의 대외 악재가 글로벌 시장에 즐비하게 대기하고 있다는 점이다. 익명을 요구한 기업 관계자는 "최근 외환시장의 동요를 일시적인 현상으로 여길 수만은 없다는 판단"이라며 "최근 외화자금 담당자들 간에 '당분간 보유 달러를 풀지 않아야 한다'는 얘기까지 나오고 있는 실정"이라고 전했다.

일부 수출기업들은 이에 따라 '외화 자금난→환율 급등→원화 자금난→신인도 하락→무역금융 마비' 등의 사태가 벌어졌던 지난해 말의 악몽을 떠올리고 있다.

환율이 심리적 지지선인 달러당 1500원을 뚫고 올라갈 경우 실물경제에 미치는 파장은 거의 '패닉' 수준이 될 것으로 보고 있다. 시나리오 경영을 한다고는 하지만 달러당 1500원 이상을 '최악의 상황'으로 놓고 경영계획을 수립한 기업은 없기 때문이다.

외환당국이 환율 급등을 저지할 수 있는 단호한 모습을 보이지 않을 경우 기업들의 한숨소리는 더욱 커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조일훈 기자 ji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