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가 올해 시설투자액을 7조원대로 낮추기로 했다. 반도체와 LCD(액정표시장치) 설비 등에 11조8000억원을 썼던 지난해에 비해 35%가량 투자 규모가 축소됐다. 삼성전자 이외의 다른 기업들도 시설투자를 줄일 것이라고 밝혔다. 전국경제인연합회가 국내 600대 기업을 대상으로 조사한 올해 시설투자 계획은 지난해보다 2.5% 줄어든 86조7593억원으로 집계됐다. 600대 기업의 시설투자액이 감소하는 것은 2001년 이후 8년 만에 처음이다.

삼성전자,반도체 · LCD 투자 축소

삼성 고위 관계자는 17일 "글로벌 경기침체 상황을 감안해 시설투자 규모를 줄이기로 했다"며 "4조원가량의 시설투자를 줄이는 것을 골자로 한 잠정 투자계획안을 전경련 측에 통보했다"고 말했다. 이 회사가 시설투자비를 7조원대로 줄인 것은 2004년 7조7000억원 이후 5년만이다. 이 관계자는 "대규모 시설투자가 필요한 반도체와 LCD 분야를 중심으로 투자액을 조정했다"며 "이번 계획안은 잠정안으로 경영환경 변화에 따라 투자규모를 조정할 수도 있다"고 덧붙였다.

제조업 투자 10.9%↓

시설투자 규모를 축소한 것은 삼성전자만이 아니다. 전경련이 국내 600대 기업을 대상으로 올해 시설투자 규모를 조사한 결과,제조업체들의 투자규모는 지난해보다 10.9% 줄어든 46조4221억원에 그칠 것으로 나타났다. 반도체,디스플레이,조선 등 수출 주력업종의 투자가 급격히 줄었기 때문이다. 이 세 업종의 투자규모는 지난해보다 각각 42.5%와 40.9%,26.5% 줄어들 것으로 집계됐다. 제조업종에서 두자릿수 규모로 투자를 늘리기로 한 분야는 지난해에 이어 설비고도화 투자를 이어가는 철강(26.4%)과 정유(42.6%) 등 일부에 불과했다.

비제조업은 전력 · 가스 · 수도(27.0%)와 숙박 · 음식 · 레저(22.9%) 부문의 투자 호조로 시설투자 규모가 지난해보다 9.5% 늘어날 것으로 조사됐다. 비제조업으로 분류되는 기업들도 경기에 민감한 건설(-18.1%),운송 · 창고(-2.4%) 업종은 지난해보다 투자를 줄일 계획이라고 밝혔다.

조사에 응한 기업들은 투자결정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변수로 '세계경기 회복 여부'(36.8%)를 꼽았다. 투자 활성화를 위해서는 '금융시장의 조속한 안정'(33%)과 '정부의 과감한 경기부양 정책'(32.5%) 등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재계,비상경제대책반 본격 가동

삼성,현대 · 기아자동차,LG,SK 등 18개 그룹 대표들과 전경련 임원들로 구성된 비상경제대책반은 이날 서울 소공동 롯데호텔에서 제1차 대책회의를 갖고 노대래 기획재정부 비상경제상황실장(차관보)에게 기업들이 겪고 있는 애로사항을 전달했다.

회의 참석자들은 자금시장 안정을 위해 △채권안정펀드의 회사채 매입 확대 △회사채 발행 요건 완화 △부채비율을 기준으로 한 금융회사 진입규제 완화 △수출입 금융 활성화를 위한 지원 등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송형석 기자 clic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