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남미 좌파 정권의 대표주자인 우고 차베스 베네수엘라 대통령이 결국 장기집권으로 가기 위한 주요한 관문을 열어젖혔다.

2007년 말 연임제한 철폐를 내건 개헌안 부결로 적지않은 정치적 타격을 입기도 했으나 만 1년 만에 뚝심을 과시하며 밀어붙인 15일 개헌안 국민투표 결과, 94%의 투표율에 54%의 지지를 얻는 데 성공한 것이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16일 불과 석 달 전만 해도 정치적 위기에 처해있던 차베스 대통령이 자신이 내세워온 21세기형 사회주의 정책을 실행에 옮길 동력을 확보할 수 있게 됐다고 진단했다.

FT는 또 이번 국민투표 결과가 구심점을 찾지 못한 차베스의 반대파들에겐 결정적 타격이 될 것이라고 분석했다.

세계 곳곳에 불어닥친 경기 침체와 불확실성의 증대가 오히려 그의 정치적 도전수를 성공으로 이끄는 데 보탬이 됐다는 지적도 나온다.

개헌안 통과 소식을 들은 차베스 대통령은 대통령궁 발코니에 서서 환호하는 지지자들을 향해 "미래를 향한 문이 활짝 열렸다"며 "여러분이 내 인생과 동일한 정치적 운명의 역사를 다시 써준 것"이라고 사의를 표했다.

그러나 유가가 현 수준에서 회복되지 못할 경우 올 한 해가 그에게 녹록하지만은 않은 한 해가 될 것이라고 로이터는 지적했다.

야당 지도자인 오마르 바르보자는 "결과에 승복하지만 이는 공권력을 동원한 데 따른 여당의 승리"라며 "이 정권은 모든 권력을 독점한 독재정권이 되고 말 것"이라고 반발했다.

볼리비아의 에보 모랄레스 대통령, 에콰도르의 라파엘 코레아 대통령과 함께 중남미 좌파를 이끌어온 풍운아 차베스 대통령은 반미주의자임을 자처하며 사회주의 개혁을 실행에 옮겨온 인물이다.

집권기 동안 그는 중남미 최대 산유국 지위를 바탕으로 무상교육 및 무상의료 정책을 추진, 폭넓은 빈민층의 지지를 얻으며 정치적 기반을 확대했다.

반미 선동가로서 그의 이력은 잘 알려져 있다.

2006년 부시 대통령의 유엔연설 하루 뒤 연단에 서서 "이 자리에 악마가 다녀갔다. 여전히 유황 냄새가 난다"고 독설을 퍼부은 전례는 대표적이다.

다만 버락 오바마 미 대통령 당선 이후 몇 차례 관계개선 의지를 표명한 바 있어 향후 대미관계에는 변화도 감지된다.

원주민과 스페인 혼혈인 차베스 대통령은 1954년 7월 서부 사바네타시(市)에서 가난한 초등학교 교사 부부의 둘째 아들로 태어났다.

17세에 육군사관학교에 입학, 1983년 `정풍운동'의 성격을 띤 `혁명 볼리바르 운동-200'을 주도했으며 1992년에는 젊은 장교들과 정권 전복을 위한 쿠데타를 기도하다 실패, 2년간 옥살이를 하기도 했다.

1994년 풀려난 그는 정치활동을 재개, 1998년 좌파 애국전선을 결성하며 범국민적인 관심을 받게 됐고 같은해 대선에서 56%의 지지로 대통령에 당선됐다.

2002년 4월 반대 쿠데타가 발생, 정치적 시련을 겪기도 했으나 2006년 재선에 성공하며 정치력을 입증했다.

(서울연합뉴스) 김중배 기자 jbkim@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