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본시장통합법 시행(4일)을 불과 이틀 앞두고 같은 펀드에 대해서도 은행 증권 등 판매회사별로 제각각의 위험등급을 매기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자통법이 시행되면 판매사들은 펀드마다 펀드 위험등급을 정하고 이를 기준으로 투자를 권유해야 한다. 고객의 투자성향보다 위험도가 높은 등급의 펀드에 가입을 권유할 수 없다는 얘기다. 이에 따라 투자자들이 자신의 투자성향보다 높은 위험등급의 펀드를 사기 위해 펀드 위험등급을 상대적으로 낮게 매긴 판매사를 찾아나서는 현상도 빚어질 전망이다.

◆대표 펀드들도 위험등급 달라

1일 본지가 펀드 판매 규모가 큰 5개 대형 증권사를 대상으로 설정 잔액이 많은 대표 펀드들의 펀드 위험등급을 조사한 결과 동일한 펀드라도 판매사마다 위험등급이 다른 것으로 나타났다.

실제 4조원 이상 팔린 인사이트펀드에 대해 미래에셋증권은 5등급(초고위험)을 책정했고 대우 한국투자 동양종금증권 등은 4등급(고위험)을 매겼다. 대표적인 중국펀드인 '봉쥬르차이나'와 '미래에셋차이나솔로몬'은 삼성 대우 미래에셋증권에서 5등급으로 분류했고,브릭스펀드 가운데 가장 많이 팔린 '슈로더브릭스'도 삼성과 미래에셋증권에선 5등급을 받았다. 시장 평균 수익률을 추종하는 교보파워인덱스파생펀드에 대해 한국투자증권이,삼성그룹주펀드인 한국투자삼성그룹적립식펀드에 대해선 삼성증권이 각각 5등급으로 분류했다.

은행권도 펀드 위험등급이 은행마다 다르게 적용될 것으로 보인다. 은행들은 자체적으로 펀드 등급을 평가하기 어렵다고 판단해 자산운용사로부터 펀드 등급을 받아 적용키로 했는데 운용사들의 펀드 등급도 회사마다 서로 다르기 때문이다. 운용사들은 펀드 위험등급을 표준투자준칙에서 정한 5개 등급이 아닌 5~10등급으로 구분한 데다 일부 운용사는 채권혼합형펀드를 5등급 중 가장 위험이 높은 등급으로 제시해 놓은 경우도 있다.

증권업협회에서 만들어 판매사에 배포한 '표준 투자권유준칙'에 따르면 주식형펀드는 4등급,일부 성장주펀드나 파생상품에 대한 투자 비중이 높은 펀드는 초고위험인 5등급으로 분류된다. 판매사들은 오는 4일부터 이 기준에 맞춰 자율적으로 펀드 등급을 매겨 펀드를 팔아야 한다.

이에 따라 펀드를 5등급으로 적용한 판매사에선 대다수 투자자들의 펀드 가입이 까다로워진다. 펀드 가입 전 고객정보 조사 결과를 토대로 작성되는 투자성향 분류에서 5단계(공격투자형)를 받지 않은 투자자에겐 위험등급 5등급인 펀드의 판매 권유가 금지되고,그래도 투자자가 가입을 원할 경우엔 위험성을 충분히 설명하고 이에 대한 별도의 고객 확인을 받아야 하기 때문이다. 투자성향 5단계를 받기 위해선 △20~40대의 투자자가 △3년 이상을 투자해야 하며 △금융 관련 지식이 매우 풍부해야 한다.

금융감독원 관계자는 "같은 펀드라도 판매사 운용사마다 등급이 달라질 수 있다고 보고 펀드 위험등급 관련 세부 가이드라인을 오는 5월 초까지 만들어 업계에 제시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

◆자통법 시행 직후 ELS 판매계획 전무

판매사 간 '눈치보기' 현상도 나타나고 있다. 같은 펀드에 대해 경쟁사에서 위험등급을 낮게 책정할 경우 투자자들이 펀드 가입을 위해 경쟁사를 찾아갈 것이 뻔하기 때문이다. 한 대형 증권사 관계자는 "4등급과 5등급은 한 등급 차이지만 판매사나 투자자 입장에선 천지 차이"라며 "주식형펀드의 펀드 위험등급은 4등급이 가장 낮은 등급이어서 4등급을 다 적용하면 사실상 모든 주식형펀드를 팔 수 있겠지만 5등급인 경우는 굉장히 까다롭다"고 털어놨다.

이 때문에 증권사들은 고객을 뺏기지 않기 위해 이미 펀드 등급을 매겨놓고도 더 낮은 등급을 매긴 판매사가 있을까봐 최종 확정을 미루는 일도 벌어지고 있다.

위험등급 4~5등급으로 분류된 '원금 비보장형 ELS'도 자통법 시행 이후엔 당분간 발행하지 않으려는 분위기가 팽배하다. 자통법이 시행되면 사실상 주 고객인 40~60대에 대한 투자 권유가 금지되기 때문이다. 실제 우리투자증권이 당초 3일로 예정됐던 ELS 발행 계획을 철회하는 등 자통법 시행 직후 ELS를 발행키로 한 증권사는 전무한 실정이다.

김재후 기자 hu@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