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곤경에 처해서도 형통한 듯이 하고,추한 것 보기를 어여쁜 듯이 하라.'조선 후기 문인 성대중(成大中)이 군자의 마음가짐을 지적한 대목입니다. 그는 뛰어난 재주에도 불구하고 서얼이라는 신분적 한계 때문에 뜻을 다 펴지 못한 인물입니다. 그러나 그의 문장은 정신을 번쩍 깨우는 절창으로 가득합니다.

정민 한양대 교수가 그의 명문 중 처세와 관련한 내용을 고르고 자신의 단상을 곁들인 《성대중 처세어록》(푸르메 펴냄)을 출간했군요.

양반도 평민도 아닌 비운의 '경계인'으로서 '세상을 허물하기 전에 나 자신을 어떻게 가늠해야 하는지를 먼저 생각한' 그의 글들이 정민 교수의 담백한 해설과 어우러져 더욱 맛깔납니다.

들머리의 인용문 밑에 정민 교수는 '역경과 시련의 날에 비로소 그 그릇이 드러난다'면서 '툭 터진 사람에게 상황은 일희일비의 대상이 못된다'고 덧붙였습니다. '싫고 미운 것 앞에서 감정을 쉬 드러내지 마라.오히려 감싸안아 보듬는 데서 무한한 의미가 생겨난다. 한때의 분노는 아무나 할 수 있다. 하지만 그것을 가라앉혀 포용하는 도량은 아무나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

'배움'과 '마음'에 관한 문장도 빛납니다. '대저 사람이 일생 동안 쓰는 것은 배움의 힘(學力)이 아니면 마음의 힘(心力)이다. 마음의 힘이 세면 진실로 좋다. 그렇지 않다면 반드시 배움에 힘입어야 한다. '

여기에 잇닿은 해설도 백미입니다. '공부는 왜 하는가? 마음의 힘을 씩씩하게 해주기 위해서다. 공부를 해서 마음이 편해져야지,공부 때문에 마음이 짓눌리면 안 된다. 무조건 참고 속으로 삭히는 것이 수양이 아니다. 할 말을 하고 안 할 말은 하지 않는 것이 옳다. 이 분간을 잘 세우는 것이 공부다. 마음의 힘이 여기서 나온다.'

어지러운 세상을 건너는 처세의 몸가짐,절도 있는 어조로 시비를 가르고 때와 위상에 맞는 행동을 제시하면서 옹졸함에는 통렬한 질책을 가하는 선비의 육성.'아침 해와 저녁 해는 한 햇빛이 옮겨간 것이고 무더위와 매서운 추위는 같은 기운이 변화한 것'이라는 대목에도 밑줄을 긋고 싶군요.

고두현 문화부 차장 kd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