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식적으로 거론된 바도 없고 설 연휴 이후가 될 가능성이 많다. "이동관 청와대 대변인은 지난 13일 설 연휴 이전에 개각이 있을 것이란 보도가 잇따르자 이렇게 진화에 나섰다. 그러던 것이 급반전됐다. 국세청장 그림로비 의혹 논란이 거세진 것이 개각이 앞당겨진 배경이 됐다는 게 중론이다. 하루 빨리 공직사회의 기강을 바로잡고 새 진용을 갖춰 집권 2년차 국정 운영에 박차를 가하자는 판단이 깔려 있다.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차관급 인사까지 한몫에 다한 게 이런 분위기를 말해 준다.

◆전문가 · 친정 체제 배합

경제팀은 정치인을 배제하고 시장의 신뢰를 중시해 철저히 관료 출신의 전문가 중심으로 배치했다. 사정기관은 이명박 대통령의 국정 철학을 뒷받침할 수 있는 '충성심'이 강한 측근 중심으로 짰다. 전문가와 친정 체제를 적절히 배합한 셈이다.

젊은 '복심'들을 중앙부처 차관급으로 전격 발탁한 것은 이런 배경 때문이다. 이 대통령의 통치 철학을 꿰뚫고 이를 국정에 반영하는 '실세 차관'을 전진 배치해 국정을 주도적으로 이끌게 하자는 주장은 여권에서 꾸준히 제기돼 왔다. 이런 점에서 교육과학기술부 제1차관과 총리실 국무차장에 중용된 이주호 전 교육과학문화수석과 박영준 전 기획조정비서관이 7개월 만에 화려하게 복귀한 것이 눈에 띈다.

이 차관과 박 차장은 대표적인 'MB 맨'이란 점에서 기존의 '조직 2인자' 자리를 뛰어넘는 역할을 할 것으로 예상된다. 박 차장은 인선이 발표되자마자 첫 일성으로 "이 대통령의 국정 철학을 내각 곳곳에 심는 역할을 할 것"이라고 포부를 밝혔다. 이들이 또 다른 'MB 맨'인 신재민 문화체육관광부 제2차관과 함께 '차관 정치'를 국정 운영의 한 축으로 만드는 데 일익을 담당할 것이란 관측이 나오고 있다. 역으로는 '코드 인사' 논란이 불가피해 보인다.

◆이 대통령이 주도

이번 개각은 지난해 7 · 7 개각 때와 마찬가지로 철저한 보안 속에서 이뤄졌다. 인선 내용을 제대로 아는 사람은 이 대통령 외에 정정길 대통령실장과 김명식 인사비서관 등 3~4명에 불과할 것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였다.

인수위 시절 조각 때 최측근 인사들이 주도한 것과 달리 이번엔 이 대통령이 직접 챙긴 것으로 알려졌다. 이 대통령이 인사비서관실의 존안 자료와 국정원 자료를 토대로 정 실장과 김 비서관 등의 보좌를 받아 후보들을 일일이 직접 검토한 후 민정비서관실에서 정밀 검증하는 방식으로 진행됐다고 한다. 당초 이 대통령은 설 연휴 이후에 일괄적으로 인사하는 방안을 검토한 것으로 전해졌다.

그러나 국세청장 로비 의혹 및 개각과 관련한 각종 투서가 난무하면서 공무원들이 업무에서 사실상 손을 놓게 되자 조기 개각 쪽으로 급선회했다. 어차피 국세청장 인사 수요가 생긴 마당에 개각도 조속히 마무리해 혼란을 막자는 측근들의 건의가 잇따랐다. 특히 홍준표 한나라당 원내대표가 쟁점법안 처리 및 인사청문회 일정 등을 고려해 개각 시점을 "설 연휴 이전이 아니면 2월 이후로 늦춰 달라"고 요청한 것도 전격 단행의 이유가 됐다. 청와대 관계자는 "어제 밤 늦게까지도 개각과 관련해 분명하게 말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며 "오늘 오전 이 대통령에게 최종 보고가 올라갔고 이 과정에서도 우여곡절이 있었다"고 말했다.

홍영식 기자 ysho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