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맹호 민음사 회장(75 · 사진)이 '제대로 된 세계문학전집을 내야겠다'고 마음먹은 것은 50여년 전인 대학시절이었다. 번역 수준이 성에 차지 않았기 때문이다.

박 회장은 19일 기자간담회에서 "당시 《분노의 포도》를 읽다가 번역 때문에 이해할 수 없어 내던졌던 기억이 난다"면서 "중역이 아니라 전공자가 원서를 번역해야 한다고 생각했다"고 회고했다.

그는 '무턱대고 한번 해봐야겠다'는 생각으로 민음사 창립 30주년인 1995년 기획에 들어가 1998년 오비디우스의 《변신 이야기》를 1권으로 '민음사 세계문학전집'을 내기 시작했다.

이 전집은 최근 허균의 《홍길동전》으로 200종을 돌파했다. 지금까지 600만부를 판매했고 전체 2877쇄를 찍었다.

전집에서 가장 많이 팔린 《호밀밭의 파수꾼》은 35만부,《오만과 편견》이 32만부를 돌파하는 등 상업적으로도 성공을 거두었다. 지금도 200여종의 계약 · 번역이 진행중이며 이 가운데 올해 34종 48권이 출간될 예정이다.

민음사 세계문학전집에는 《동물농장》 《파우스트》 《데미안》 《백년의 고독》 등 고전문학부터 현대문학까지 세계의 주요 문학작품이 포함돼 있다.

영미권뿐 아니라 일본(5종),이탈리아(4종),페루 · 중국 · 아르헨티나 · 아일랜드 · 멕시코(각 2종),나이지리아 · 스페인 · 터키(각 1종) 등 세계 각국의 문학 작품도 들어있다.

박 회장은 선정 기준을 '세계적으로 정평이 나 있는 작품'이라고 밝혔다. 초기에는 전집간행위원회에서 목록을 작성했으나 이제는 기존 역자들의 추천,갈리마르 총서 등 세계적인 전집이 선정한 도서 목록을 참고하기도 한다.

중역이나 축역을 배제하고 원문에 충실하게 번역하는 것도 필수 요건이다. 《오만과 편견》은 윤지관 교수와 전승희씨가 10여년에 걸쳐 번역했고,《마담 보바리》는 프랑스 전문가들의 자문을 받아 주석 90여개를 달았다. "시작할 때만 해도 100권까지 낼 수 있을까 우려했지요. 앞으로 몇권까지 내겠다고 한정짓지 않고 계속 전집을 낼 생각입니다. "

전집 목록에서 눈에 띄는 건 한국 문학이다. 200번째인 《홍길동전》을 비롯해 《구운몽》 《춘향전》 《황제를 위하여》 등이 목록에 들어 있다. 이에 대해 박 회장은 "우리 작가들이 세계적인 작가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도록 앞으로도 한국 문학을 전집 목록에 계속 추가할 것"이라고 말했다.

박 회장은 지금 고전을 읽어야 하는 이유에 대해 "책은 잠재의식에 고여 있어 사람들에게 중요한 영향을 준다"면서 "오늘날 국회 등에서 드러나는 경박함을 보면 저들이 인문학 교육을 제대로 안 받았다는 생각이 든다"고 꼬집었다.

그는 또 "우리말이 변방언어라 세계적으로 많이 진출하지 못한 게 사실"이라면서 "하지만 세계적으로 좋은 평가를 받고 있는 우리의 아동도서부터 해외 진출을 서둘러야 한다"고 덧붙였다.

"나도 《마인》과 같은 대중문학에 열광하다 문학에 입문했습니다. 사람들이 쉽게 접근하고 이해할 수 있는 장르문학에도 관심이 많아요. "

민음사는 세계문학전집 200권 돌파 기념으로 '세계문학전집 특별판'도 펴냈다. 《거미여인의 키스》 등 사랑받은 작품 10종을 안상수,정병규 등 최고 디자이너들이 책의 특성을 살려 새롭게 디자인했다.

이고운 기자 cca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