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경기침체로 해운 물동량이 크게 줄어들자 세계 최대 해운회사인 머스크라인이 아시아~북미 간 컨테이너 운임을 사실상 '수익 제로(0)' 수준까지 낮췄다. 세계 2위 컨테이너 선사인 MSC 등도 잇달아 운임 인하에 나서고 있어 선발 업체가 가격 인하를 앞세워 후발업체를 무력화시키는 '치킨게임'이 해운업계에서도 본격화하고 있다. 국내 선사들은 거대 해외업체의 치킨게임과 이를 이용한 화주들의 운임 인하 요구로 이중고를 겪고 있다. 올 1분기에 적용할 운임을 놓고 협상을 벌이고 있는 유럽 노선 화주들은 국내 선사들에 운임을 낮추라고 압박하고 있다. 미주 노선의 큰손 화주들은 컨테이너 운송 정기계약을 유리하게 체결하기 위해 5월 이전에 계약을 마무리짓자는 메시지를 계속 보내고 있다.

◆머스크,'제로(0)운임'으로 압박

15일 해운업계에 따르면 세계 최대 컨테이너 정기선사인 덴마크의 머스크라인은 지난해 12월 아시아~북미 간 컨테이너 운임을 FEU(40피트짜리 컨테이너 1개)당 1700달러에서 1300달러로 인하했다. 머스크가 컨테이너 운송 요금을 낮추자 세계 2위 컨테이너 선사인 MSC와 중국 최대선사인 COSCO,완하이라인,CSCL,에버그린 등 해외 선사들도 잇달아 운임 인하 대열에 가세하고 있다.

해운업체 관계자는 "아시아~북미 간 컨테이너 운임 1300달러에는 벙커 수수료,터미널 이용 수수료,각종 할증료 등이 포함돼 있다"며 "벙커C유 가격이 40달러대로 하락했지만 이 정도 운임이라면 선사에 돌아가는 운용 수입은 사실상 '제로(0)'라고 봐야 한다"고 말했다.

해운전문가들은 해외 대형선사들의 잇단 운임 인하 움직임에 대해 "해운업의 특성상 주기적으로 불황과 호황이 되풀이되는데 불황 때 운임을 대폭 낮춰 후발주자들을 도태시킨 뒤 호황이 오면 물량을 독식하려는 전략이 밑바탕에 깔려 있다"고 진단했다.

이에 따라 세계 최대 물동량이 몰리는 중국에서 춘제(설 연휴)가 끝나는 2월 이후 스폿 물량이 쏟아지더라도,운임의 급속한 하락으로 인해 수익성에 큰 도움을 주지는 못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늘어나는 '빈 배'도 부담

해운시황 악화로 운항을 중단한 채 정박해 있는 빈 컨테이너선도 급증하고 있다. 프랑스계 해운컨설팅 업체인 악사 알파라이너는 지난 5일 기준으로 전 세계에서 운항을 중단한 컨테이너 선박이 세계 컨테이너 선대의 약 4.5%에 달하는 총 210척,43만TEU(20피트짜리 컨테이너)에 이르는 것으로 집계했다. 작년 11월 말 115척,27만TEU보다 한 달여 만에 100여척 늘어난 수치다. 외환위기 당시에도 운항 중단 컨테이너선 비중은 3~4%대에 불과했다.

덩치가 작을수록 멈춰 선 배가 많았다. 1000~2000TEU급 선박과 1000TEU급 이하 선박이 각각 68척과 52척으로 전체의 절반 이상을 차지했다. 5000~7500TEU급 선박은 24척,7500~1만TEU급의 대형 컨테이너 선박은 7척으로 집계됐다. 여기에 머스크라인은 최근 항로 구조조정으로 6500TEU급 컨테이너선 8척을 올 5~6월까지 계선(繫船 · 운항을 중단하고 항구에 정박하는 것)하기로 결정했다. 해운업계는 선사별로 운항을 중단하는 선박이 더 늘어날 것으로 우려하고 있다.

◆화주들,조기 운임협상 요구

컨테이너선 공급이 수요를 웃돌면서 화주들의 운임 인하 요구도 거세지고 있다. 작년 12월 올해 1분기 운임협상에 들어간 유럽노선의 화주들은 국내 선사와의 협상 시한을 끌며 압박하고 있다. 이원우 한진해운 컨테이너선 부문장(전무)은 "유럽노선 운임은 작년 초 FEU당 2000달러가 넘었는데 지금은 1200달러 수준으로 떨어졌다"며 "여기서 더 낮출 경우 유가비용이나 터미널 사용료 등을 내고 나면 남는 것이 없어 협상 여지가 없다"고 말했다.

오는 5월 계약을 앞두고 있는 미주노선 운임협상에도 관심이 쏠리고 있다. 머스크의 운임 인하로 바닥 수준까지 운임이 떨어지자 대형 화주들이 가격협상 시기를 앞당기자고 강력하게 요구하고 나섰기 때문이다.

대형 해운업체 관계자는 "운임이 지속적으로 떨어져 바닥권에 도달했다는 인식이 확산되자 화주들이 조기 협상과 계약을 앞다퉈 요구하고 있다"며 "이번 어려움을 이겨내면 글로벌 해운기업으로서 입지를 탄탄히 굳힐 수 있어 화주들의 요구를 어떻게 처리할지 다각도로 방안을 모색하고 있다"고 말했다.

김동민 기자 gmkdm@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