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한국 경제가 맞닥뜨린 가장 큰 화두는 '기업 구조조정'이다. '대공황 이후 최악'으로 평가되는 글로벌 경기 침체를 맞아 최근 몇년간 호황을 누려왔던 기업들이 급격한 실적 악화와 부실 증가로 흔들리고 있기 때문이다. 구조조정을 미루다가는 금융사의 건전성 악화로 이어져 실물경제 불안이 가중될 위험이 높아지고 있다. 이에 따라 정부는 연초부터 건설사와 조선사 등을 대상으로 구조조정에 착수했다. 우선 100대 건설사와 19개 중소 조선사를 대상으로 구조조정 대상을 최대한 빨리 확정짓는다는 방침이다.


◆선제적 구조조정 필요

지난해 9월 리먼브러더스 파산으로 촉발된 글로벌 금융위기가 전 세계 실물경기 침체로 번졌다. 올해 미국 유럽연합(EU) 일본 등 세계 3대 경제권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처음으로 동시에 마이너스 성장을 기록할 전망이다. 10%를 웃돌던 중국 성장률도 반토막날 것으로 예상된다. 대외의존도가 큰 한국은 세계경제 침체의 직격탄을 맞았다. 성장을 견인하던 수출이 지난해 11월 -19.0%,12월 -17.4%로 두 달 연속 두자릿수 감소세를 보였다. 내수소비까지 얼어붙으면서 국내 기업들의 실적은 급속히 악화되고 부실이 늘어날 조짐을 보이고 있다.

이를 방치하면 은행 등 금융권이 동반 부실화될 수 있다. 선제적 구조조정으로 부실 기업을 솎아내 거래 상대방에 대한 위험을 줄여야만 불확실성을 해소할 수 있는 상황이다. 부실기업을 구조조정해야 우량기업에 대한 금융 시스템이 복원돼 경기 회복을 앞당길 수 있다는 얘기다.

◆채권단 주도,정부는 측면지원

이번 구조조정은 민간 주도로 진행된다. 외환위기 때와 달리 기업 부실이 서서히 발생하고 있는 데다 기업의 재무여건 등도 외환위기 때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좋기 때문이다. 매커니즘은 이렇다. 우선 주채권은행이 구조조정 대상 기업을 가지고 구조조정 방안을 짠다. 여기에 채권단 내에 이견이 있을 경우 채권금융기관 조정위원회에서 조율을 하게 된다. 금융감독당국은 이런 구조조정이 원활히 이뤄지도록 측면 지원한다. 다만 채권단의 구조조정 속도가 느리거나 부실기업을 제대로 솎아내지 못할 경우 직접 개입할 방침이다.

조선 · 건설업 구조조정이 대표적인 예다. 채권금융사들은 지난 연말까지 업종별 '신용위험평가 태스크포스(TF)'를 만들어 신용위험 평가를 위한 기준과 세부절차를 만들었다. 건설업의 경우 부채비율 등 재무적 요소 40%,업력과 경영진 평판 등 비재무적 요소를 60% 반영하기로 했다.

이 같은 기준에 따라 현재 주채권은행별로 100대 건설사 중 92개사와 유동성 위기를 겪고 있는 19개 중소조선사 등 111개사에 대한 1차 평가를 진행하고 있다. 이들 업체를 4개 등급으로 나눠 일시적 유동성 부족 기업(B등급)에는 신규 자금을 지원하고 부실징후기업(C등급)은 워크아웃(기업개선작업)에 넣는다. 부실기업(D등급)은 채권회수 등을 통해 퇴출시킨다.

만약 다른 채권금융사가 등급 평가에 이의를 제기하면 업체별로 검증작업반을 꾸려 이견을 조율한다. 검증작업반에서도 합의가 안되면 채권금융기관 조정위원회로 넘겨 최종 판단을 받게 된다. 구조조정 과정엔 필연적으로 채권단 내부의 이해상충이 있을 수밖에 없기 때문에 사실상 조정위가 핵심 의사결정을 맡게 된다. 외환위기 때 구조조정 칼날을 휘둘렀던 기업구조조정위원회와 비슷한 역할을 할 것이란 얘기다. 이미 기업구조조정촉진법에 의해 설립돼 있던 조정위는 지난 8일 김병주 서강대 명예교수를 위원장으로 선임했고 사무국도 대폭 확대,구조조정 채비를 끝냈다.

금융당국이 지난해 11월 말 만든 기업재무개선지원단은 전체 기업구조조정의 강도와 방향을 결정하는 컨트롤타워 역할을 하게 된다. 단장을 맡은 김종창 금융감독원장은 최근 "정부와 채권단 간의 가교 역할을 맡게 될 것"이라면서도 "채권단이 제대로 하지 못하면 금융 당국이 관여하겠다"고 밝혔다.

◆구조조정 전방위로 확산될 듯

침체가 가속화되고 있는 만큼 구조조정 대상도 확대될 수밖에 없다. 금융당국은 1분기까지 300대 건설사와 50여개 중소조선사에 대한 구조조정을 마무리짓고 다른 업종,다른 기업에 대해서도 손을 댈 계획이다. 석유화학 자동차 반도체 등으로 확대될 가능성이 있다. 김 금감원장은 지난해 12월 "어려움을 겪고 있는 반도체와 자동차 업종에 대해 관련 부처와 채권단이 자금 사정을 점검하고 있다"며 "문제가 깊어지면 개별 기업 중심으로 금융지원과 구조조정을 병행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대기업그룹에 대한 금융지원과 구조조정 작업도 일부 착수했다. 금융당국은 필요할 경우 채권은행을 통해 보유자산 매각 등 구조조정을 추진할 방침이다.

김현석 기자 realis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