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만다 리플리 지음│조윤정 옮김│다른세상│360쪽│1만5000원

9 · 11 테러에서 살아남은 사람들을 인터뷰한 결과,이들이 뭔가 잘못됐다고 느끼고 계단으로 달려가기까지 평균 6분을 미적거렸다고 한다. 어떤 사람은 계단 앞까지 가는데 45분이나 소비했다. 왜 그랬을까. 또 다른 조사에서는 생존자의 40%가 사무실을 떠나기 전에 갖가지 물건들을 챙겼다고 답했다. 컴퓨터를 끄거나 집에 전화를 하는 사람도 있었다. 이는 재난에 직면했을 때 사람들이 비상상황을 인식하고 받아들이기까지 시간이 걸리기 때문이다.

2005년 뉴올리언스에 태풍 카트리나 경보가 내려졌을 때 20%가 대피하지 않고 '버틴' 것도 같은 이유 때문이다. 나중에 밝혀졌지만 전체 주민의 64%가 태풍이 그렇게 강력할지 몰랐다고 말했다. 여러번 태풍을 겪은 사람들이 이번에도 자신을 비켜가리라고 생각해 차가 있었는데도 떠나지 않았던 것이다.

'타임'지 기자인 아만다 리플리는 《언씽커블》에서 이 같은 양상을 재난에 직면한 사람들의 3단계 행동양식 중 첫 번째 '거부 단계'의 대표적인 예로 든다. 불이 나거나 건물이 무너지면 바로 계단으로 달려가야 하지만 사람들은 거의 공통적으로 꾸물대면서 시간을 허비한다는 얘기다.

'거부단계'를 지나면 '숙고단계'로 접어든다. '어? 어쩌지…'하면서 살길을 찾는 동안 우리의 뇌는 공포에 지배된다. 공포에 사로잡히면 혈액이 좀 더 쉽게 응고되는 화학구조로 바뀌고 혈관은 상처를 입더라도 출혈이 줄어들도록 수축한다. 공포는 또 코르티솔 과다분비로 인해 뇌의 움직임을 방해하거나 교란시키면서 '터널 시야' 현상 등의 혼란을 야기한다. 일시적으로 방광 기능이나 시각 기능의 마비를 가져오기도 한다.

'숙고단계'에서는 집단사고 현상도 함께 나타난다. 재난이 발생하면 누구나 제 역할을 찾아서 하는 경향이 있다는 것이다. 한 클럽에서 불이 나자 육체노동에 익숙한 요리사와 종업원들은 불을 끄려고 달려갔고 의사 손님들은 긴급구호에 나섰으며 병원 관계자들은 의사와 간호사들을 조직하고 지시를 내리기 시작했다.

세 번째 단계는 '결정적 순간'이다. 이 단계에서 가장 흔히 일어나는 반응이 정신적 공황과 일시적 마비 현상이다. '넋이 나간 것' 같거나 '뻔히 보면서도 몸이 움직여지지 않는' 상태가 이 경우다. 이를 넘어서면 생존 확률이 훨씬 높아진다.

한마디로 '거부'와 '숙고'를 신속하게 지나 합리적인 행동을 최대한 빨리 실행할수록 살아남는 데 유리하다는 것이다.

저자는 1917년 2000여명의 사망자를 낸 프랑스 화물선 몽블랑호 폭발사고부터 2001년 9 · 11에 이르기까지 홍수와 테러,총기난사,쓰나미,비행기 추락사고 등 각종 재난을 겪은 사람들을 일일이 만나 한편의 논픽션 스릴러 같은 이 책을 완성했다.

그가 확인했듯이 대부분의 사람들은 재난 상황에서 우리가 막연히 예상하는 것과 다른 반응을 보인다.

따라서 그 행동양태를 이해하고 있다면 실제 재난이 닥쳤을 때 살아남을 가능성이 그만큼 커진다.

이 책은 긴급 상황에서 무지로 인한 공포심을 극복하게 해주고 현실을 정확하게 인식할 수 있는 힘,공황과 마비를 넘어 생존으로 가는 길을 함께 가르쳐 준다.

고두현 기자 kd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