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희석 사장은 1957년 전남 곡성 생이다. 3남3녀 중 장남.부친은 면사무소장으로,논 네 마지기가 전부였다. 생활이 안됐다. 어릴적부터 동생들 돌보고 집안일 돕느라 놀아본 기억이 없다. 고등학교를 졸업할 즈음에 집에서 젖소를 키웠다.

"아버지는 공무원 생활을 접고 낙농회사에서 받은 대출금과 홍콩 차관으로 젖소를 샀어요. 마을에서 두 번째였죠.20마리였나요. 당시엔 우유값도 괜찮았어요. 어미 젖소 팔고 새끼 키우며 가계를 꾸리셨어요. 그 돈으로 6남매 다 대학에 갈 수 있었지요. 마을에서 애들이 다 대학을 마친 집은 우리집밖에 없어요. "

대학은 군대를 마친 뒤에 진학했다. 주산 8단의 상고 출신이라 본부중대 행정병으로 배치받았다. 군대생활은 원주에서 절반,춘천에서 절반 했는데 부대원의 면면을 보고 깜짝 놀랐다. 80%가 대학 재학생이었던 것.

"우물 안 개구리란 생각이 들었어요. 제대 후 대학에 진학했어요. 군대가 인생을 보는 시각을 바꿔준거죠."

권 사장은 여행업에 뛰어들기 전 의류 수출입업체인 하이센코리아와 광고대행사인 서울마케팅코리아에서 일했다.

권 사장의 여행업에 대한 눈은 서울마케팅코리아에서 일하던 시절에 뜨였다. "하와이여행시에 깜짝 놀랐어요. 일본의 고등학생이 하와이로 수학여행을 온 거예요. 우리나라가 일본에 10년 뒤진다고 했을 때 앞으로 여행업은 무조건 된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

그래서 나름대로 여행업 준비를 했다. 처음에는 광고업 경험도 있고 해서 매체광고를 통한 소매 여행업을 생각했다. "TV광고료를 많이 네고하는 시절이어서 심야시간대는 100만원짜리를 10만원에도 낼 수 있었거든요. "

이후 박상환 현 하나투어 회장과 의기투합했다. 박 회장은 중학교를 같이 다닌 불알친구.소매여행 파트너를 찾다가 홀세일 사업모델의 박 회장과 생사고락을 같이 하기로 결정한 것.

하나투어 창립 멤버인 박 사장은 지난해 사장이 되기까지 최고재무관리자(CFO)로 하나투어의 모든 재무를 관장했다. 기업가치와 주주가치를 극대화하는 기획 및 최고 재무관리로서의 역량이 뛰어나다는 평을 들어왔다. 2000년 여행업계 최초의 국내 증시 상장과 2006년 런던 증시 상장을 이끈 주역이기도 하다.

좌우명은 '진인사대천명'(盡人事待天命)."20년 전 우연찮게 장애인이 조각한 이 문구를 선물받았어요. 보는 순간 이 문구가 내 삶의 방향키라고 생각했습니다. 살아오는 동안 할 수 있는 것에 최선을 다했다고 생각합니다. 실패했을 때도 크게 실망하지 않았고,노력한 것에 만족하며 하늘의 뜻으로 받아들였습니다. 그래서 낙천적이란 소릴 듣는가 봅니다. "

취미는 등산과 골프.골프는 핸디캡13 실력이다. 술은 한두 잔 정도.옛날에는 말술이었다. 두 번이나 폭탄주 7잔째 망막이 터져 수술을 받은 뒤로는 술자리의 분위기만 맞추는 정도다. 담배는 피우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