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화옵션상품 키코(KIKO)로 피해를 본 모나미, 디에스엘시디 등 2개 사가 제기한 '효력 정지 가처분 신청'을 30일 법원이 받아들임에 따라 나머지 키코 피해 기업들의 법적 대응도 잇따를 전망이다.

지난달초 97개 업체들이 함께 "키코 상품은 불공정 거래로 무효"라는 취지로 제기한 '채무 부존재 확인' 본안 소송의 판결이 아직 남아 있지만, 일단 법원이 가처분 승인을 통해 이 상품에 관한 시비를 가릴 필요가 있음을 인정한 만큼 향후 피해 업체들은 법적 대응 과정에서 큰 힘을 얻게 됐다.

무엇보다 키코 피해업체들은 이번 판결이 키코 상품 자체가 계약 환율의 상단을 넘으면 기업측이 무제한의 손실을 입는 '불평등 구조'라는 주장에 대해 법원이 "일리 있다"며 손을 들어 준 것으로 해석하고 있다.

재판부는 이날 결정문에서 "키코 계약상 환율이 급등하면 모나미 등이 무제한의 손실이 생기고 이는 회사의 거래 목적이나 재무구조, 영업상황, 위험관리 능력 등에 비춰 적합하지 않으므로 은행이 손실을 제한할 수 있는 다른 거래 조건을 권할 의무가 있는데 이행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아울러 "계약이 내포한 위험에 관해서도 일반적ㆍ추상적으로 알렸을 뿐 구체적으로 설명하지 않았고 환율이 안정적으로 하락할 것이라는 전망만을 강조하고 상승할 가능성을 설명하지 않았다"며 계약 체결 과정의 문제도 지적했다.

가처분 신청 승인은 이처럼 키코 사태에 대한 법원의 인식이 기업측에 긍정적이라는 의미일 뿐 아니라, 키코 피해 기업의 실제 자금 운용에도 큰 도움이 된다.

두 업체와 SC제일은행간 키코 계약 가운데 기업이 해지 의사를 밝힌 지난달 3일 이후 구간에 대해 효력을 중단함으로써, 기업이 본안 판결 선고 전까지는 은행에 피해액을 상환하지 않아도 되기 때문이다.

중소기업청중앙회에 따르면 중앙회에 키코 피해 사례를 신고한 170여개 기업의 총 피해액은 원.달러 환율 1천300원을 기준으로 약 1조8천억원에 달하고, 이 가운데 앞으로 은행에 갚아야할 돈만 1조1천~1조2천억원 정도가 남아있는 상태다.

한 개 업체당 달마다 평균 약 1천550억원을 은행에 내야한다는 설명이다.

요즘같은 자금난에 대다수 중소기업들이 이같은 자금 압박을 감당하기 어려운 만큼, 피해를 신고한 기업들 뿐 아니라 나머지 300여개 피해업체들도 속속 효력정지 가처분 신청에 동참할 것으로 보인다.

중소기업중앙회 김태환 통상진흥파트장은 "앞으로 키코 피해 중소기업들의 가처분 신청이 잇따를 것으로 예상된다"고 밝혔다.

'환 헤지 피해기업 공동대책위원회'의 정석현 위원장(수산중공업 회장)은 이번 판결에 대해 "법원이 키코 상품 자체, 또는 약정 과정에 문제가 있다는 사실을 인정했다는 점이 중요하고, 두 업체는 본안 소송이 끝날 때까지 키코 관련 불입을 유예받아 유동성 위험에서 벗어나게 돼 다행"이라고 평가했다.

다만 그는 "앞으로 다른 업체들의 가처분 신청도 받아들여질 가능성이 커졌지만, 법원이 개별 업체의 키코 약정 당시 상황과 유동성 등 현재 상황을 종합적으로 판단하는만큼 100% 승인을 장담하긴 어려울 것"이라고 덧붙였다.

(서울연합뉴스) 신호경 기자 shk999@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