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나 항공 20년…승무원 1기생의 추억담

"요즘은 기종별로 갖춰져 있는 모캅(mock-upㆍ비행기 실내모형)이 없어 임시방편으로 계열사인 금호고속에서 버스 좌석을 떼와 기내 상황을 연출,그 속에서 카트를 밀면서 두 달 동안 서비스 실습을 했습니다. "

20년 전인 1988년 12월23일은 아시아나항공이 비행기를 처음 띄운 날이다. 당시 김포~부산 간 첫 노선에 투입된 169석 규모의 보잉 737-400 항공기에 탑승했던 김혜련 선임사무장(42)과 장정근 수석사무장(46).아시아나항공 승무원 1기로 입사해 지구 300바퀴에 해당하는 1만2000~1만3000시간을 비행한 베테랑 승무원이자 아시아나항공의 성장과 함께 해온 이들은 감회가 남다르다.

취항 20년을 맞아 서울 강서구 오쇠동 아시아나항공 본사에서 만난 이들은 열악한 교육환경 속에서도 원년 멤버라는 자부심과 젊은 패기로 어려움을 견뎌냈다고 회고했다. "교육환경은 정말 말이 아니었죠.입사해서 첫 출근을 종로구 사직동에 있던 사회과학도서관 강의실로 했습니다. 본격적인 기내서비스 교육은 회사가 임대한 강서구청 사거리 고려항공 빌딩에서 2개월 동안 받았습니다. " 김 선임사무장이 기억을 되살려 당시 상황을 소개했다. 장 수석사무장도 거들고 나섰다. "교육기자재가 없어서 임시방편으로 그룹 계열사인 금호고속의 중고 버스에서 좌석을 떼와 기내석으로 꾸몄습니다. 서비스 카트는 손재주 있는 승무원이 나무상자로 만들어 사용했고 비상시 구조를 위한 훈련은 장흥유원지 등 대형 수영장을 돌아다니며 받았죠.누구 하나 불평하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그때로 다시 돌아가라면…글쎄요. "



말문이 열리자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20년간의 경험담을 풀어놨다. 장 수석사무장은 '호랑이 담배피던 시절'의 얘기를 꺼냈다. "1990년대 초까지 기내에서 아시아나항공 마크가 새겨진 화투를 승객들에게 기념품으로 나눠 드렸습니다. 지금으로선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지만 그땐 상당히 인기가 있었죠.일부 국제선 승객은 화투판을 벌이기도 했지만 다른 승객들도 그러려니 하고 항의하지 않았어요. " 김 선임사무장도 맞받았다. "아 참,그거 아세요? 1990년대 초 휴대폰이 처음 나왔을 때 기내에서 휴대폰이 제한품목이었다는 것.기내에 들어오면 승무원에게 맡겼다가 비행기를 나설 때 돌려받았죠.벽돌만한 크기 때문에 흉기로 사용될 위험성이 높았기 때문이죠."

'스무살 청년'으로 성장한 아시아나항공의 괄목상대는 수치로 확연하게 드러난다. 취항 당시 탑승정원 169명의 보잉 737-400 1대로 김포~부산,김포~광주 2개 노선을 운항했으나 지금은 국내 12개 도시에 13개 노선을 띄우고 있다,국제선(여객부문)은 21개국 67개 도시 84개 노선에 취항 중이다. 비행기 대수도 71대로 늘어났다. 출범 당시 823명이던 직원은 현재 8321명으로 10배,회사 설립 이듬해인 1989년 한 해 424억원에 그쳤던 매출은 지난해 말 기준 3조6505억원으로 90배가량 성장했다.

이들은 잊지 못할 추억으로 첫 비행기 도입식을 떠올렸다. "첫 취항을 불과 13일 남겨두고 미국에서 비행기가 들어왔습니다. 당시 황인성 회장님과 승무원,정비사 등 200여명의 임직원이 추위 속에서 1시간을 기다리다 색동옷을 입은 비행기가 내려오는 걸 보고 서로 서로 얼싸안고 눈물을 쏟아냈습니다. "

김동민 기자 gmkdm@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