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위기 초래한 前 CEO 9명
FT, 올해 '추락한 별'로 꼽아

글로벌 금융 시스템이 뿌리째 흔들리면서 한때 금융계를 좌지우지했던 월가의 황제들도 금융위기를 초래한 장본인이란 오명을 쓰고 떠나야 했다. 일부는 그 와중에도 거액의 보너스를 포기하지 못해 지탄의 대상이 됐으며 지금까지도 투자자 소송 등에 시달리고 있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23일 △리처드 풀드(리먼브러더스) △제임스 케인(베어스턴스) △스탠리 오닐(메릴린치) △마틴 설리번(AIG) △켄 톰슨(와코비아) △케리 킬링거(워싱턴뮤추얼) △안젤로 모질로(컨트리와이드) △다니엘 머드(패니메이) △리처드 사이론(프레디맥) 전 최고경영자(CEO) 등 9명을 올해 월가의 대표적인 '추락한 별'로 꼽았다.



리처드 풀드 전 CEO는 자신이 15년이나 이끌었던 리먼브러더스가 지난 9월 파산보호를 신청하면서 쫓겨났다. 지금 그와 동료들이 매일 출근하던 맨해튼 미드타운 사무실은 리먼브러더스 미국 자산을 인수한 영국계 은행 바클레이즈의 임원들이 차지하고 있다. 뉴스위크지는 최근 그의 부인 캐시 풀드가 회사가 파산 신청을 한 9월에도 매주 5만~10만달러어치의 명품 쇼핑을 즐겼다고 보도했다.

제임스 케인은 글로벌 금융위기의 도화선이 된 베어스턴스의 마지막 CEO다. 그는 지난해 여름 베어스턴스가 어려움을 겪는 와중에도 브리지게임 시합에 참가하는 '여유'를 부렸다. 베어스턴스가 망하면서 10억달러에 달하던 그의 재산은 6000만달러로 줄었다. 그래도 센트럴파크가 내려다보이는 맨해튼의 고급 아파트 두 채를 올초 구입하는 등 그의 호화 생활에는 별 차이가 없다.

스탠리 오닐 전 메릴린치 CEO는 작년 10월 쫓겨날 때만 해도 '월가 불명예'의 상징이었으나 지금은 다른 거물들이 줄줄이 같은 대열에 동참해 이 같은 꼬리표가 희석됐다. 그는 뉴욕의 헤지펀드 비전캐피털어드바이저스에서 일할 것이란 얘기가 나돈다.

화려한 언변을 자산으로 17세에 AIG 세일즈맨으로 채용돼 톱 자리까지 오른 마틴 설리번은 회사가 망해갈 때도 "우리는 이 폭풍에서 살아남을 수 있다"고 외쳐댔다. 모리스 그린버그 전 회장이 벌여놓은 일들을 뒤치다꺼리 하느라 애썼지만 AIG를 파멸로 이끈 무분별한 파생상품 투자를 차단하지는 못했다.

켄 톰슨 전 와코비아 CEO는 전임자와 달리 인수ㆍ합병(M&A)에 매우 신중하고 조심스러운 편이었다. 그러나 2006년 캘리포니아 모기지(주택담보대출)업체 골든웨스트파이낸셜을 250억달러에 인수했을 땐 이 같은 조심성이 사라져버렸다. 인수 직후부터 주택시장은 곤두박질치기 시작했고,골든웨스트파이낸셜의 부실자산은 결국 와코비아의 재무제표에 구멍을 내버렸다. 케리 킬링거 전 워싱턴뮤추얼 CEO는 18년의 재임 기간 부동산 붐과 공격적인 서브프라임 모기지(비우량 주택담보대출) 취급 덕분에 회사를 일약 미국 대형 모기지 회사 중 하나로 키웠다. 하지만 부동산 시장의 거품 붕괴와 함께 실업자 신세가 됐다.

지난 1월 뱅크오브아메리카(BOA)에 매각된 미 최대 모기지회사 컨트리와이드의 안젤로 모질로 전 CEO는 2006년 5200만달러의 천문학적인 보수를 챙겼다. 회사가 망할 지경에 이른 지난해에도 1000만달러 이상의 연봉을 받았고,스톡옵션을 행사해 1억2150만달러를 집으로 가져갔다. 그는 지금 컨트리와이드 주주들로부터 집단소송을 당한 상태며,모기지 위기가 시작되기 직전에 회사 주식을 판 혐의로 미 증권거래위원회(SEC)의 조사도 받고 있다.

이 밖에 양대 모기지회사인 패니메이의 다니엘 머드와 프레디맥의 리처드 사이론 전 CEO도 각각 모기지 위기로 천문학적인 손실을 입은 회사를 구하려고 애썼지만 CEO 직에서 물러나야 했다.

박성완 기자 psw@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