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상선언 잉크 마르기도 전에 약속 역행" 지적

글로벌 경제의 동반침체가 가시화되면서 세계 각 국이 무역장벽을 높이는 등 보호무역주의의 움직임이 꿈틀대고 있다.

지금 당장 이런 흐름이 심각한 수준이 아닐지라도 보호무역주의의 경향이 가속화되면 이미 침체에 빠진 세계 경제에 매우 심각한 타격을 줄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워싱턴포스트(WP)는 22일 미국에서는 174억 달러 규모의 자동차산업 긴급구제 방안이 사실상 정부의 기업에 대한 보조금 지급이라는 비판이 있고 프랑스, 러시아, 인도, 브라질 등 세계 주요 나라들에서도 보호무역적 조치가 속속 등장하고 있다고 전했다.

프랑스는 외국계 기업의 인수전으로부터 자국 기업을 보호하기 위해 국가펀드를 조성할 계획이며, 아르헨티나와 브라질도 수입 와인과 직물, 가죽제품 등에 관세 인상 방안을 모색 중이라는 것이다.

인도 정부도 지난달 18일 자국 농민 보호를 위해 수입 콩기름에 20%의 추가 관세를 물렸으며, 조만간 다른 수입 식용유에도 관세인상 조치를 취할 전망이다.

유럽의 최대 자동차 시장인 러시아는 자국 자동차산업을 지키기 위해 지난 10일부터 수입차에 부과하는 관세를 최고 35% 인상했으며 다음날에는 외국산 돼지고기와 가금류에도 관세를 올렸다.

여기에 미국은 최근 중국이 수출업자들에게 현금지원, 세금환급, 우선대출 등 불공정 지원을 하고 있다며 세계무역기구(WTO)에 제소하겠다는 입장을 밝힌 바 있다.

이렇듯 각국이 앞다퉈 보호무역적 조치를 취하는 것은 지난달 15일 세계 정상들이 워싱턴에 모여 최소 12개월간 보호무역 조치를 새로 만들지 않고 자유시장경제의 원칙에 충실하겠다는 내용의 공동선언을 내놓은 지 불과 수 주만이다.

WP는 이를 두고 "잉크가 채 마르기도 전에 일부 나라들이 이같은 약속에 역행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런 상황에서 WTO의 도하개발어젠다(DDA) 협상 타결 가능성도 그 어느 때보다 불투명한 상황이다.

파스칼 라미 WTO 사무총장은 최근 DDA 협상 참여국들이 올 연말까지 주목할 만한 타결점을 도출할 만큼 의견접근이 이뤄지지 않았다고 한 발짝 물러서기도 했다.

보호무역주의로 회귀하는 움직임은 미국의 리더십 변화에 크게 영향을 받은 측면도 있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 당선인은 그동안 조지 부시, 심지어 빌 클린턴 전 대통령보다도 자유무역 협정에 회의적인 시각을 드러내왔다.

WP는 경제가 어려운 때 각국 정부가 무역을 저해하는 수단에 끌리는 경향이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이는 매우 나쁜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면서, 1930년대 내수산업 보호를 위해 각국이 취했던 무역규제들은 결국 대공황의 후폭풍을 장기화하면서 글로벌 무역전쟁으로 비화되기도 했다고 지적했다.

코넬대 에스와 프라사드 교수는 "수출기업들은 혁신적이며 역동적인 경향이 있고, 질 좋은 일자리를 만들어내는 능력이 있다"면서 "각종 무역장벽이 이들 기업을 무너뜨리면 하도급 업체의 연쇄 부도와 심각한 실업사태로 이어져 결국 전체 경제에 악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우려했다.

(서울연합뉴스) 김용래 기자 yonglae@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