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의 문턱 넘고 얼굴 두꺼워져…무조건 부딪혀 기회로 만들었죠"

두 번의 사업 실패가 그에게 남긴 것은 산더미 같은 빚과 극심한 우울증뿐이었다. 그는 1993년 6월 신경 안정제 '세코날' 30알과 소주 두 병을 들고 선친이 묻힌 경기도 송추 운정 공원묘지를 찾았다. 주머니에는 '먼저 떠나 미안하다'는 내용의 유언장이 들어 있었다.

하지만 뜻대로 되지 않았다. 낮부터 술을 들이켠 탓인지 그는 소주 몇 모금을 더 마시다가 엉겁결에 잠 들었다. 세코날을 손에 쥔 상태였다. 네 시간 뒤 멀쩡히 깨어나 생각을 고쳐먹었다. "그래,이제부터 사는 인생은 덤이다. 죽을 용기로 일하면 무얼 못하겠는가. 다시 한 번 뛰어 보자."

'실패한 백수' 오석송(54)은 재기에 나섰다. 친구들로부터 5000만원을 빌려 만든 메타바이오메드를 15년 뒤 매출 180억원 안팎의 탄탄한 중소기업으로 일궈냈다. 그것도 세계에서 인정받는 '작지만 강한 기업'으로 만들었다. 지식경제부와 한국무역협회,한국경제신문사가 공동 제정한 '한국을 빛낸 무역인상' 심사위원회가 지난 12일 오 사장을 '올해의 무역인'으로 선정한 이유다.

충북 오창 본사에서 만난 오 사장은 "모든 일은 마음 먹기에 따라 달라진다"며 "미국발(發) 금융 위기와 경기 침체 탓에 모두가 어렵다고 아우성이지만 죽을 힘을 다해 노력하면 반드시 좋은 기회를 찾을 수 있다"고 강조했다.

▶'올해의 무역인상'을 받으셨습니다. 축하드립니다.

"자그마한 중소기업 사장이 과분한 상을 받게 돼 몸둘 바를 모르겠습니다. 메타바이오메드는 수술할 때 사용하는 '인체에서 녹는 실'과 충치 치료 때 치아 내부에 넣는 충전재,인공 뼈 이식재 등 크게 3개 제품을 만드는 회사입니다. 매출은 지난해 152억원에서 올해는 180억원가량을 예상하고 있습니다. 매출의 94%는 미국 중국 등 90여개국에서 나옵니다. "

▶수출에 주력한 이유가 있습니까.

"제게 두 번의 실패를 안겨 준 사업 아이템이 모두 치과용 충전재였습니다. 그 때 알게 된 게 '국내 병의원 시장은 워낙 보수적이어서 신생 기업이 뛰어들기 힘들다'는 것이었어요. 협소한 국내에서 시장 쟁탈전을 벌이기보다는 넓은 해외 무대로 나가는 게 훨씬 낫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과거에 사업하면서 쌓은 해외 인맥도 있었고…."

▶글로벌 경기 침체가 심화되면서 중소기업들이 어려움에 직면했습니다.

"유례 없는 위기가 온 건 사실이지만 중소기업이 아직 진출하지 않은 해외시장은 무궁무진합니다. 게다가 운 좋게도 환율이 '우리 편'이에요. 일본 중국 유럽 등 경쟁국에 비해 가격 경쟁력이 높아진 셈이죠.실제 메타바이오메드가 기틀을 닦은 시점이 바로 외환위기 때였습니다. 원·달러 환율이 급등하면서 수익이 엄청나게 늘었고,헐값에 공장과 사옥도 마련했습니다. 어떻게 보면 그런 기회가 다시 다가온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

▶이런 위기 상황에서도 매출과 수출을 확대한 노하우가 궁금합니다.

"중소기업은 역시 CEO(최고경영자)가 어떤 마음가짐을 갖고 일하느냐가 가장 중요한 것 같습니다. 저는 1년 중 100일은 해외에서 보냅니다. 항공 마일리지가 300만 마일이 넘을 정도예요. 신시장을 발굴하기 위해 의료기기 관련 해외 전시회는 빼놓지 않고 참석합니다. 얼마 전 독일에서 열린 '메디카 2008'에서도 800만달러가 넘는 수출 주문을 받았어요. 전시회는 결코 견문을 넓히기 위해 참석하는 한가한 자리가 아닙니다. 우리 제품을 사 줄 곳이 도대체 어디인지를 찾는 일종의 '전쟁터'예요. 해외 전시회에 나가면 화장실에 간 사이 바이어가 들를까봐 물도 잘 안 마십니다.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를 수십 번 갔어도 그 유명한 코파카바나 해변은 구경조차 못 했죠."

▶한국의 중소기업이 해외 시장을 뚫는 게 쉽지 않았을 텐데요.

"1993년 '자살 소동'을 겪은 뒤 얼굴이 두꺼워졌어요. '죽으려고도 했는데 무얼 못하겠는가. 밑져야 본전이니 무조건 부딪쳐 보자'는 식이 된 거죠.바이어에게 문전박대당한 건 셀 수도 없습니다. 제안서를 내도 감감무소식이기 일쑤였고….하지만 두드리니까 열리더군요. 중국에 '녹는 실' 수출 길을 뚫을 때는 해당 바이어를 열 번 이상 찾아가 50도짜리 '백주(고량주)'를 100병 넘게 마시기도 했어요. 그렇게 해서 존슨&존슨이 장악한 중국 시장에도 진출했습니다. 그러고 보면 고(故) 정주영 현대 회장이 남긴 '해 보기나 했어'는 정말 명언이에요. 방 구석에서 고민한다고 풀리는 일은 없습니다. 기회는 반드시 찾아 다니는 사람에게만 옵니다. "

▶수출 확대의 최대 비결은 메타바이오메드의 높은 기술력 때문이 아닌가요.

"그렇지 않습니다. 메타바이오메드의 기술력은 전 세계적으로 보면 중·상위권 정도예요. 그렇다고 우리 제품의 기술력이 떨어져 팔 수가 없다는 것은 변명에 불과하죠.기술력이 부족하더라도 제품을 팔 수 있는 시장은 널려 있습니다. 그걸 찾는 게 CEO와 해외 영업부의 몫이지요. 물론 기술 개발은 바이어 발굴만큼 중요한 일입니다. 메타바이오메드는 매출의 10% 이상을 연구개발(R&D)에 투자합니다. 정부가 지원하는 17건의 연구 과제에 참여해 80억원 상당의 연구비도 지원받았습니다. 덕분에 세계 일곱 번째로 '녹는 실'을 개발했고,지금도 매년 1~2개 신제품을 선보이고 있습니다. "

▶재계에 '비상 경영'이 유행처럼 번지면서 한국 직장인들의 사기도 많이 떨어져 있습니다.

"감원, 감봉, 사업 축소 등을 뜻하는 비상 경영을 한다면 임직원들이 적극적으로 일할 생각을 하겠습니까. 내부고객들이 마음껏 일할 수 있도록 멍석을 깔아 주는 게 CEO의 역할이라고 생각합니다. 메타바이오메드 임직원 수가 105명인데 지난달 이들이 사내 제안제도를 통해 올린 안건이 674건에 달합니다. 우리 임직원들의 '회사 사랑'이 이 정도예요. 저도 이렇게 '이쁜' 직원들을 위해 사내에 헬스클럽 골프연습장 테니스클럽은 물론 술을 마실 수 있는 주점도 만들어 줬습니다. 연말에는 보너스도 줄 생각입니다. 하지만 임직원들이 선의의 경쟁을 할 수 있도록 올 들어 적정 인원보다 10명을 더 채용했습니다. '미꾸라지(기존 임직원)'들이 더 열심히 일하도록 '메기'를 풀어놓은 셈이죠."

▶위기에 빠진 중소기업을 살리기 위해 정부에 바라는 점이 있다면.

"정부에 무언가를 바라기 전에 중소기업 스스로 자생력을 키우는 것이 중요하다고 봅니다. 각자 살아갈 길은 스스로 찾아야 합니다. 그런 뒤 부족한 게 있으면 정부에 부탁해야 합니다. 정부도 '모든 중소기업을 다 살리겠다'는 생각을 버려야 합니다. 될 성부른 기업을 선별해 집중적으로 지원해야 합니다. 그래야 '명품 중기'가 나올 수 있습니다. "

▶메타바이오메드의 향후 목표는.

"올 4월 증권선물거래소에서 코스닥 신규 상장 기념식을 열 때 기념사 대신 동요를 한 곡 불렀어요. '떴다 떴다 메타바이오메드,날아라 날아라~'.이제 자리를 잡았으니 전 세계를 향해 멀리 날아 올라야죠.2015년까지 회사 매출을 2000억원대로 올려 놓을 겁니다. "

글=오상헌 기자/사진=김병언 기자 ohyeah@hankyung.com


[ 약력 ]

△1954년 서울 출생
△1973년 선린상고 졸업
△1973년 유니온셀로판(현 서통) 재무팀
△1975년 신영 재무팀
△1979년 영보화학 재무팀
△1983년 단국대 일문학과 졸업
△1985년 대주실업 관리부장
△1987년 한국슈어프로덕트 관리이사
△1989년 한국슈어프로덕트 대표이사
△1990년 KS상사 대표
△1993년 메타치재(현 메타바이오메드)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