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기술산업ㆍ지엔텍 최대주주측 지분 처분
채권자 담보권 실행으로 최대주주 바뀌기도

상장사 최대주주에게 돈을 빌려주면서 담보로 받은 주식을 채권자가 처분(반대매매)해 최대주주 지분율이 급감하는 사례가 속출하고 있다. 심지어 담보로 제공한 주식을 채권자가 인수해 아예 회사의 주인이 바뀌는 경우도 많다. 연말 주주명부 폐쇄를 앞두고 그동안 수면 위로 드러나지 않았던 최대주주나 최대주주 지분 변동이 속속 밝혀질 전망이다.

9일 유가증권시장에서 오일샌드 사업을 하는 한국기술산업은 최대주주인 이문일 사장 측의 보유지분 중 405만여주(5.40%) 줄어 지분율이 6.78%로 낮아졌다고 공시했다. 이는 신주인수권 행사 및 장내매매가 더해진 것으로,실제 지난 10월 중 채권자의 반대매매로 인해 줄어든 주식은 481만여주에 달했다.

최대주주 측이 회사 주식을 담보로 사채를 빌려 쓰다가 10월 말 주가가 급락하며 반대매매가 나온 것이다. 유가 하락으로 오일샌드 사업에 대한 기대감이 줄어든 데다 전 세계적인 증시급락 여파로 주가가 곤두박질친 탓이다. 채권자는 주가 급락으로 평가금액이 일정 담보 비율 아래로 떨어지거나 채무 이행이 어렵다고 판단될 경우 주식을 팔아 현금을 챙기게 된다.

지난달 중순에는 환경 및 자원개발사업을 진행하는 지엔텍홀딩스와 네트워크 보안업체 어울림정보기술의 최대주주 지분율이 반대매매로 낮아졌다고 공시했다. 지엔텍홀딩스는 정봉규 회장의 지분 가운데 2.28%가 미래상호저축은행의 담보권 행사로 장내매도됐으며,어울림정보는 넷시큐어테크놀러지를 비롯한 최대주주 측 지분 18.59%가 이터너티인베스트먼트 측으로 넘어간 뒤 시장에 풀렸다.

지난 9월엔 현재 법정관리에 들어간 상태인 대우전자부품이 지온텍 외 7인의 지분이 전량 반대매매되며 최대주주가 전자부품연구원(2.86%)으로 바뀌기도 했다.

채권자가 지분을 시장에 내다파는 반대매매 대신 지분을 아예 인수,주인이 되는 경우도 잇따르고 있다. 지난 2일 반도체 설계 전문업체 비엔알엔터프라이즈와 액정표시장치(LCD) TV 전문기업 루멘디지탈이 각각 채권자의 담보권이 실행되며 최대주주가 바뀌었다. 헤드셋전화기 전문업체 오페스도 미국계 투자사인 크레인파트너스가 담보권 실행 및 장내매수 등으로 지분율을 31.4%까지 끌어올렸다.

지난 10월 이후 지금까지 담보권이 행사된 기업은 10개 안팎으로 파악되지만 연말 주주명부 폐쇄를 통해 추가로 확인될 것이라는 우려도 커지고 있다. 사채업계의 한 관계자는 "명동에선 반대매매가 나온 기업들이 100여개라는 얘기까지 있다"며 "보수적으로 봐도 30여개 정도 추정되는 만큼 연말 주주명부 폐쇄를 앞두고 어쩔 수 없이 최대주주 변경사실을 고백하는 기업들이 나올 것"으로 예상했다. 지금까지는 채권자로부터 반대매매 소식을 듣지 못해 공시를 못했다고 변명할 수 있었지만 결산일 주주명부 폐쇄가 얼마 남지 않아 조만간 확인될 것이라는 설명이다. 코스닥시장 내 신명B&F나 네오쏠라 중앙바이오텍 등은 주주명부 폐쇄를 통해 확인한 최대주주 변경 사실을 최근 공시했다.

전문가들은 최대주주들의 주식담보를 통한 차입을 미리 알 수 없는 게 문제라고 지적한다. 주식을 담보로 맡긴 기업을 알면 투자에 주의할 수 있기 때문이다. 증권선물거래소 시장감시위원회 관계자는 "채권자가 지분 처분 사실을 알려주지 않을 경우 회사나 최대주주 등도 알 수 없어 지분변동신고 공시 위반에 해당되지는 않는다"고 말했다. 하지만 내년 2월 시행되는 자본시장통합법에서는 최대주주 지분의 담보 제공 사실까지 지분공시를 통해 밝히도록 하고 있다.

이선엽 굿모닝신한증권 연구위원은 "반대매매가 나오는 기업들은 사업 확장을 위해 무리하게 자금을 끌여들이거나 재무구조가 부실한 경우가 많다"며 "신사업에 대한 막연한 환상으로 추격매수하는 것은 주의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조재희/서정환 기자 joyja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