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EO & 매니지먼트] 인물 탐구-구본무 LG회장 …그의 스토리엔 '藝人'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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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번 필~ 받으면 '대충대충'은 못참아
#1.구본무 LG 회장은 뜻밖에도 이헌재 전 경제부총리와 절친하다. 두 사람의 이미지는 대조적이다. 구 회장은 털털하고 이 전 총리는 칼날 같다. 그래도 가끔 만나 술잔을 부딪히고 동반 해외여행도 곧잘 다닌다. 이 전 부총리는 올해 초 구 회장의 모친인 고 하정임 여사가 별세했을 때 하루도 빠짐없이 장례식장을 지켰다. 발인제도 함께 했다. 구 회장은 과거 대우 출신으로 한때 대기업과 금융권을 쥐고 흔들었던 '저승사자' 이헌재와 어떻게 가까워진 것일까. 구 회장 참모들도 "이 대목은 잘 모르겠다"고 한다.
#2."도대체 치타가 달리는 모습을 보긴 봤습니까. 치타는 이렇게 안 뜁니다. 잘 관찰한 다음에 다시 만들어오세요. " 서울올림픽의 마스코트였던 '호돌이'를 만들었던 디자인 파크사의 김모 디자이너.그는 1996년 축구단 LG치타스(현재 FC서울)의 마스코트를 제작하기 위해 달리는 치타를 형상화했다가 구 회장에게 야단맞았다. 아무리 마스코트라고 해도 실제 모습과 엇비슷해야 하지 않겠느냐는 주문이었다.
#3."날아가는 모습만 보고 이름을 맞출 수 있는 새가 150마리가 넘는다. " 조류학자로 유명한 윤무부 경희대 교수는 구 회장 얘기만 나오면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운다. 새에 대한 전문지식이 웬만한 조류학자 이상이라는 것.구 회장은 2000년 12월 국내 최초로 그림으로 된 조류도감인 '한국의 새'를 발간하기도 했다.
구본무 회장이 어떤 인물인가를 보여주는 몇가지 단편들이다. 하지만 이런 조각들만으로는 도저히 그의 진면목을 알기 어렵다. 더욱이 그는 언론에도 거의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다. 구 회장은 2003년 지주회사를 출범시킨 뒤 계열사 임직원들에게 "사업 포트폴리오를 정하는 일과 대장을 정하는 일만 하겠다"고 선언했다. 자신의 역할에 선을 그은 것이다.
하지만 구 회장을 잘 아는 지인들은 그를 '백조'에 비유한다. 겉으로는 유유자적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계열사들의 상황을 수시로 점검하며 분투하고 있다는 것.
창사 61주년을 맞은 LG그룹은 올해 사상 처음으로 110조원의 매출을 올릴 것으로 전망된다. 지난해 한국 국내총생산(GDP)의 9분의 1을 넘는 금액이다. 지난 3분기까지 이미 누적 매출액 81조119억원을 기록했다. 영업이익도 사상 최대 수준이다. 지난 3분기까지 누적 영업이익 7조7000억원을 달성,연초 목표했던 7조원을 일찌감치 뛰어넘었다.
그룹 관계자는 "LG가 일사불란하게 움직일 수 있는 것은 구 회장의 '조용한 리더십'에 힘입은 것"이라며 "대외적인 이미지와 실제 역할에 상당한 차이가 있다"고 설명했다.
그렇다면 앞서 구 회장의 조각난 스토리들은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구 회장은 경영을 하지 않았더라면 '예인(藝人)'이 되었을 인물이라는 얘기가 있다. 한 분야에 '필(feel)'이 꽂히면 '매니아' 수준이 될 때까지 연구를 멈추지 않는다는 것.새 전문가가 된 것,당구 구력이 무려 700점에 달한다는 점이 그 반증이라는 설명이다. 정상국 ㈜LG 부사장은 "구 회장은 흥미를 느끼면 전문가가 될 때까지 한 분야에 몰두한다"며 "즉석에서 몇 시간을 강의할 수 있는 주제가 한 두 가지가 아니다"고 말했다.
예인 기질을 가진 사람들의 성격이 그렇 듯 '얼렁뚱땅'과 '대충대충'은 참지 못한다. '모로 가도 서울만 가면 된다'는 식의 발언을 했다가는 불호령이 떨어지기 십상이다. 이 같은 성격은 골프 라운딩에서 그대로 드러난다. 구 회장과 라운딩을 경험했던 LG 임원들에게 골프장에서 자주 들은 질책이 무엇이냐고 물으면 "트리플 스코어(100타 이상)도 좋으니까 성의있게 쳐라"라고 입을 모은다. '6개월 불문율'이 생긴 것도 이 때문이다. 골프 연습장에서 6개월 이상 기본기를 닦은 뒤 회장을 수행하라는 것.구 회장의 골프 실력은 핸디캡 3 수준이다.
구 회장은 술 버릇도 고집스럽다. 소주,양주 등을 두루 마시지만 폭탄주에는 손사래를 친다. 폭탄주를 권하는 사람이 있으면 "차라리 알 잔 두 잔을 먹겠다"고 응수한다. 최근 경영자들이 즐겨 먹는 와인은 꼭 먹어야 하는 상황에서만 찾는다. 술을 강권하는 것도 싫어한다. LG 임직원들이 '먹을 수 있는 만큼만 스스로 따라 마시는 것'을 구본무주(酒)로 정의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그룹을 통할하는 방식도 독특하다. 실무와 관련해서는 'CEO와는 멀리,직원들과는 가깝게'가 모토다. 구 회장은 계열사 CEO들과의 접촉을 최대한 자제한다. CEO들 대부분은 매년 6월과 11월에 각각 한 번씩 이뤄지는 컨센서스 미팅에서만 구 회장을 독대할 수 있다. 통상 하루에 한 계열사와 진행하는 컨센서스 미팅은 다음해에 예상되는 경영환경을 분석하고 이에 따른 사업전략 방향에 합의하는 자리다. 이 자리에서 합의된 내용에 대해서는 계열사 CEO에게 모든 책임과 권한을 준다.
CEO들은 "철저히 결과만 추궁하는 경영방식이 훨씬 더 무섭다"는 반응이다. 최근 LG솔라에너지에서 LG스포츠단 사장으로 자리를 옮인 안성덕 대표는 구 회장의 리더십에 대해 "덕담을 나누다가도 반드시 사업의 정곡을 꿰뚫는 질문 한 두개를 던진다"며 "CEO들을 부리는 방법을 확실하게 알고 있다"고 말했다.
그렇다 하더라도 '털털함'은 구 회장의 영원한 트레이드 마크다. 지난 4월 LG이노텍 광주사업장을 예고없이 방문했을 때의 일이다. 공장 옥상에 마련된 착륙장에 LG 마크가 새겨진 헬기가 내리자 사업장 임원들은 깜짝 놀랐다. 일부 임원은 제대로 옷도 갖춰입지 못하고 달려나왔다. 이들을 향한 구 회장의 첫마디는 "뭣들 해,일들 않고…"였다.
송형석 기자 click@hankyung.com
#1.구본무 LG 회장은 뜻밖에도 이헌재 전 경제부총리와 절친하다. 두 사람의 이미지는 대조적이다. 구 회장은 털털하고 이 전 총리는 칼날 같다. 그래도 가끔 만나 술잔을 부딪히고 동반 해외여행도 곧잘 다닌다. 이 전 부총리는 올해 초 구 회장의 모친인 고 하정임 여사가 별세했을 때 하루도 빠짐없이 장례식장을 지켰다. 발인제도 함께 했다. 구 회장은 과거 대우 출신으로 한때 대기업과 금융권을 쥐고 흔들었던 '저승사자' 이헌재와 어떻게 가까워진 것일까. 구 회장 참모들도 "이 대목은 잘 모르겠다"고 한다.
#2."도대체 치타가 달리는 모습을 보긴 봤습니까. 치타는 이렇게 안 뜁니다. 잘 관찰한 다음에 다시 만들어오세요. " 서울올림픽의 마스코트였던 '호돌이'를 만들었던 디자인 파크사의 김모 디자이너.그는 1996년 축구단 LG치타스(현재 FC서울)의 마스코트를 제작하기 위해 달리는 치타를 형상화했다가 구 회장에게 야단맞았다. 아무리 마스코트라고 해도 실제 모습과 엇비슷해야 하지 않겠느냐는 주문이었다.
#3."날아가는 모습만 보고 이름을 맞출 수 있는 새가 150마리가 넘는다. " 조류학자로 유명한 윤무부 경희대 교수는 구 회장 얘기만 나오면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운다. 새에 대한 전문지식이 웬만한 조류학자 이상이라는 것.구 회장은 2000년 12월 국내 최초로 그림으로 된 조류도감인 '한국의 새'를 발간하기도 했다.
구본무 회장이 어떤 인물인가를 보여주는 몇가지 단편들이다. 하지만 이런 조각들만으로는 도저히 그의 진면목을 알기 어렵다. 더욱이 그는 언론에도 거의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다. 구 회장은 2003년 지주회사를 출범시킨 뒤 계열사 임직원들에게 "사업 포트폴리오를 정하는 일과 대장을 정하는 일만 하겠다"고 선언했다. 자신의 역할에 선을 그은 것이다.
하지만 구 회장을 잘 아는 지인들은 그를 '백조'에 비유한다. 겉으로는 유유자적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계열사들의 상황을 수시로 점검하며 분투하고 있다는 것.
창사 61주년을 맞은 LG그룹은 올해 사상 처음으로 110조원의 매출을 올릴 것으로 전망된다. 지난해 한국 국내총생산(GDP)의 9분의 1을 넘는 금액이다. 지난 3분기까지 이미 누적 매출액 81조119억원을 기록했다. 영업이익도 사상 최대 수준이다. 지난 3분기까지 누적 영업이익 7조7000억원을 달성,연초 목표했던 7조원을 일찌감치 뛰어넘었다.
그룹 관계자는 "LG가 일사불란하게 움직일 수 있는 것은 구 회장의 '조용한 리더십'에 힘입은 것"이라며 "대외적인 이미지와 실제 역할에 상당한 차이가 있다"고 설명했다.
그렇다면 앞서 구 회장의 조각난 스토리들은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구 회장은 경영을 하지 않았더라면 '예인(藝人)'이 되었을 인물이라는 얘기가 있다. 한 분야에 '필(feel)'이 꽂히면 '매니아' 수준이 될 때까지 연구를 멈추지 않는다는 것.새 전문가가 된 것,당구 구력이 무려 700점에 달한다는 점이 그 반증이라는 설명이다. 정상국 ㈜LG 부사장은 "구 회장은 흥미를 느끼면 전문가가 될 때까지 한 분야에 몰두한다"며 "즉석에서 몇 시간을 강의할 수 있는 주제가 한 두 가지가 아니다"고 말했다.
예인 기질을 가진 사람들의 성격이 그렇 듯 '얼렁뚱땅'과 '대충대충'은 참지 못한다. '모로 가도 서울만 가면 된다'는 식의 발언을 했다가는 불호령이 떨어지기 십상이다. 이 같은 성격은 골프 라운딩에서 그대로 드러난다. 구 회장과 라운딩을 경험했던 LG 임원들에게 골프장에서 자주 들은 질책이 무엇이냐고 물으면 "트리플 스코어(100타 이상)도 좋으니까 성의있게 쳐라"라고 입을 모은다. '6개월 불문율'이 생긴 것도 이 때문이다. 골프 연습장에서 6개월 이상 기본기를 닦은 뒤 회장을 수행하라는 것.구 회장의 골프 실력은 핸디캡 3 수준이다.
구 회장은 술 버릇도 고집스럽다. 소주,양주 등을 두루 마시지만 폭탄주에는 손사래를 친다. 폭탄주를 권하는 사람이 있으면 "차라리 알 잔 두 잔을 먹겠다"고 응수한다. 최근 경영자들이 즐겨 먹는 와인은 꼭 먹어야 하는 상황에서만 찾는다. 술을 강권하는 것도 싫어한다. LG 임직원들이 '먹을 수 있는 만큼만 스스로 따라 마시는 것'을 구본무주(酒)로 정의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그룹을 통할하는 방식도 독특하다. 실무와 관련해서는 'CEO와는 멀리,직원들과는 가깝게'가 모토다. 구 회장은 계열사 CEO들과의 접촉을 최대한 자제한다. CEO들 대부분은 매년 6월과 11월에 각각 한 번씩 이뤄지는 컨센서스 미팅에서만 구 회장을 독대할 수 있다. 통상 하루에 한 계열사와 진행하는 컨센서스 미팅은 다음해에 예상되는 경영환경을 분석하고 이에 따른 사업전략 방향에 합의하는 자리다. 이 자리에서 합의된 내용에 대해서는 계열사 CEO에게 모든 책임과 권한을 준다.
CEO들은 "철저히 결과만 추궁하는 경영방식이 훨씬 더 무섭다"는 반응이다. 최근 LG솔라에너지에서 LG스포츠단 사장으로 자리를 옮인 안성덕 대표는 구 회장의 리더십에 대해 "덕담을 나누다가도 반드시 사업의 정곡을 꿰뚫는 질문 한 두개를 던진다"며 "CEO들을 부리는 방법을 확실하게 알고 있다"고 말했다.
그렇다 하더라도 '털털함'은 구 회장의 영원한 트레이드 마크다. 지난 4월 LG이노텍 광주사업장을 예고없이 방문했을 때의 일이다. 공장 옥상에 마련된 착륙장에 LG 마크가 새겨진 헬기가 내리자 사업장 임원들은 깜짝 놀랐다. 일부 임원은 제대로 옷도 갖춰입지 못하고 달려나왔다. 이들을 향한 구 회장의 첫마디는 "뭣들 해,일들 않고…"였다.
송형석 기자 clic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