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정부 그린북

실물경제 위축 현상이 당초 예상보다 빠른 속도로 진행되고 있다고 정부가 공식 보고서를 통해 처음으로 밝혔다.

기획재정부는 4일 발표한 경제동향 보고서(그린북)에서 "최근 우리 경제는 생산 내수 수출 등 실물지표가 감소세로 전환하는 등 세계경제 침체에 따른 하방위험이 확대되고 있다"며 "국제금융시장 불안이 실물경제 위기로 확산됨에 따라 우리 경제도 전반적인 위축현상이 조기에 가시화하는 모습"이라고 평가했다. 이 같은 언급은 그동안 그린북에 등장했던 표현들 중 가장 암울한 것으로 실물경기 침체가 너무 빠르고 깊다는 뜻을 담고 있다.

민간소비의 경우 통상 20% 안팎의 증가율(전년 동월 대비)을 보여왔던 신용카드 국내 승인액이 재정부 속보치 기준으로 지난달엔 9.8%까지 떨어졌다. 신용카드 국내승인액 증가율이 한 자릿수로 낮아진 것은 2006년 10월 이후 37개월 만이다.

국산 자동차의 내수 판매량도 감소세가 확대돼 지난 10월 -0.1%였던 것이 지난달엔 -27.7%로 악화됐다. 백화점과 할인점 매출은 지난 10월만 해도 보합 수준이었다가 11월에는 각각 7.1%,3.9% 증가로 반전됐으나 작년에 비해 휴가일수가 이틀 많았다는 것을 감안하면 실질적으론 감소 추세가 이어지고 있는 것으로 분석됐다.

소비뿐만 아니라 생산 고용 수출 등 다른 경제지표들도 일제히 악화됐다. 10월 광공업생산은 기저효과와 수출 증가세 둔화,내수 부진 등의 여파로 작년 같은 달에 비해 2.4% 감소했다. 10월 소비재판매도 차량용 연료 등 비내구재와 의복 등 준내구재 소비 감소로 3.7% 줄었다.

10월 취업자 수는 작년 같은 달에 비해 9만7000명 증가하는 데 그쳐 고용 부진이 심해졌다. 경기선행지수와 경기동행지수는 각각 11개월,9개월 연속 떨어졌다. 수출도 11월 들어 해외 수요 둔화와 수출 단가 하락,조업 일수 감소 등에 따라 18.3% 감소했다. 10월 설비투자 추계는 반도체 장비 등 기계류에 대한 투자가 감소한 탓에 작년 같은 달에 비해 7.7% 줄었다.

그나마 위안이 되고 있는 것은 경상수지 흑자 전환과 소비자물가 안정이다. 경상수지는 고환율로 여행수지와 경상이전수지가 흑자로 전환하면서 지난 10월 49억1000만달러 흑자를 기록했다. 11월 경상수지도 당초 예상의 두 배 수준인 20억달러 안팎의 흑자가 될 것이라고 재정부는 예상했다. 11월 소비자물가는 석유제품의 가격 하락 등으로 작년 같은 달에 비해 4.5% 상승하는 데 그쳐 4개월째 오름세가 둔화했다.

김인식 기자 sskis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