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자리를 지켜라] ③ 노조의 고통분담 ‥노조가 공장간 인력이동 막아서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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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차 勞勞 갈등으로 전환배치 못해 생산차질
임금동결-고용보장 맞교환으로 위기 돌파해야
싼타페와 베라크루즈를 생산하는 현대자동차 울산 2공장은 지난 1일부터 근무시간을 주간 4시간,야간 4시간씩 절반으로 줄였다. 차가 안 팔려 조업단축이 불가피해졌기 때문이다.
반면 아반떼와 i30을 생산하는 3공장은 물량이 넘쳐 잔업과 특근을 실시하고 있다. 경기침체로 유지비가 적게 드는 중소형차 수요가 많아진 덕분이다.
회사는 일감이 없는 2공장 근로자를 일감이 많은 3공장으로 전환배치하는 것을 추진해왔다. 하지만 노조의 반발로 전환배치를 못하고 있다. 근로자의 작업장 이동이 거의 불가능해지면서 한쪽에선 공장이 바삐 돌아가고 있지만 다른 쪽에선 일감없이 빈둥빈둥 노는 인력이 수두룩한 진풍경이 벌어지고 있다.
현대차는 내수와 수출감소로 아웃소싱 인력을 일부 감원하고 12월 한 달간 2만대가량의 완성차 생산을 줄일 계획이다. 주문이 급속히 줄어든 탓이다. 하지만 노조는 독점적 권력과 이기주의를 바탕으로 자동차업계의 위기를 애써 외면하고 있다. 현대차 관계자는 "일감을 서로 확보하려는 현장 직원들의 욕심과 통제받지 않는 노조의 권력이 맞물리면서 인력운영이 큰 차질을 빚고 있다"며 "노조가 상생의 정신을 바탕으로 양보와 협력을 할 때 회사의 생산성도 올라가고 직원들의 일자리도 보존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기업을 살리고 일자리를 유지하기 위해선 노조의 양보가 전제돼야 한다. 노조가 내몫만 고집할 경우 회사는 몰락의 길을 걸을 수밖에 없어서다. 미국 자동차 '빅3' 근로자들이 해고불안에 떠는 것도 양보와 협력을 모르는 노조의 배타적 권력으로 회사의 경쟁력이 크게 떨어진 탓이다. 박영범 한성대 교수(경제학)는 "한때 잘나가던 GM이 강성노조의 힘에 밀려 쇠락의 길에 접어든 전철을 밟지 않으려면 우리나라 노조들도 투쟁만능주의에서 벗어나고 임금억제에 나서는 등의 자구노력을 기울여야 할 것"이라고 당부했다.
실제로 노동현장에선 양보교섭을 통해 임금동결 대신 고용안정을 보장받는 노조가 많다. 당초 물가상승률 등을 감안해 5.8%의 임금인상률을 요구했던 금융노조는 조만간 임금을 동결하는 대신 고용안정을 약속받는 교환방식으로 협상을 타결지을 전망이다.
기아차 노조도 내년 1월부터 대형차와 소형차를 한 라인에서 만드는 혼류(混流)방식으로 생산하기로 합의했다. 주문이 줄어든 대형 레저용 차량인 카니발을 생산 중인 경기 광명시 소하리 1공장에서 수출물량이 늘고 있는 소형차 프라이드를 병행 생산키로 한 것.대형차와 소형차 간 혼류 생산을 노조가 양보한 것은 처음이다. 작업생산권한을 회사에 양보하는 대신 노조는 고용보장이란 더 큰 이득을 얻는 셈이다.
인기 차종의 물량을 다른 라인에 일부 넘겨주는 데 노조가 합의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이번 물량조정으로 기아차는 경기 상황에 더욱 신축적으로 대응할 수 있게 됐다. 현대차에선 아직도 노조의 반대로 전환배치는 물론 혼류생산도 불가능하다. 세계 1위 자동차업체인 일본 도요타는 필요할 땐 언제든지 공장별로 생산차종을 유연하게 전환할 수 있다. 시장의 수요에 맞게 탄력적으로 생산방식을 바꿀 수 있는 것이다.
한때 구조조정을 둘러싸고 심각한 노사갈등을 겪었던 코오롱 구미공장 노조도 양보교섭을 통해 고용안정에 주력하고 있다. 노조가 원가절감운동에 앞장서고 임금동결에 합의하자 회사 측은 그 대가로 고용안정을 약속했다. 이명박 대통령도 최근 한 라디오연설을 통해 "구미의 한 대기업 노조가 2년간 일자리를 보장하는 대신 원가절감운동 등 기업살리기에 앞장서 신선한 바람을 불러일으켰다"며 코오롱 구미공장을 실례로 꼽기도 했다.
노동부 조사에 의하면 금융위기가 본격화된 9월 이후 노사 화합 선언을 한 사업장 수는 전년 동기 대비 3배를 웃도는 651곳에 달해 노조의 양보교섭이 확산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윤기설 노동전문기자 upyk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