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도공포'로 금융사 등 회사채 매수 꺼려
당분간 '고공비행'… 2009년 하반기 하락 예상

한국은행이 최근 두 달 만에 기준금리(정책금리)를 연 5.25%에서 연 4%까지 1.25%포인트 내리고 추가 인하를 분명히 했지만 시장금리는 여전히 고공비행을 하고 있다. 대통령까지 나서서 "시장금리를 낮추라"고 다그치는데도 금리는 왜 안 내려가는 것일까.

◆거꾸로 가는 시장금리

증권업협회가 고시하는 BBB-급(투자등급 중 신용도가 가장 낮은 것,3년물) 회사채 금리는 요즘 연 12%대 중반으로 2001년 5월 이후 7년6개월 만에 최고 수준이다. 한은의 기준금리 인하 행진이 시작된 지난 10월 초보다 금리가 오히려 1.5%포인트가량 올랐다. 그나마 이 정도 금리에 채권 발행을 할 수 있다면 다행이다. 신동준 현대증권 채권분석팀장은 "BBB-급은 요즘 거래가 거의 안 된다"며 "실제 채권을 발행하려면 더 높은 금리를 제시해야 할 수 있다"고 말했다.

우량등급인 AA-급 회사채는 사정이 좀 나은 편이지만 역시 한은의 기준금리 인하 행진이 시작된 이후 1%포인트 이상 금리가 상승해 현재 연 8.8%대에 거래된다. 한은이 정책금리를 내렸지만 기업들의 자금조달 부담은 더 커졌다는 것이다.

주택담보대출금리의 기준이 되는 양도성예금증서(CD) 금리도 '찔끔' 내리는데 그쳤다. 최근 두 달간 CD금리 인하폭은 약 0.5%포인트에 불과하다. 이에 따라 시중은행에서 변동금리로 주택담보대출을 받을 때 적용되는 금리는 한은의 기준금리 인하 전이나 지금이나 별 차이가 안난다.

◆신용 위험 때문에 매수 꺼려


한은이 정책금리를 내리면 시장금리도 따라 내리는 게 일반적이다. 그런데 최근 이 같은 메커니즘이 무너진 이유는 뭘까. 무엇보다 금융회사들의 자금 여력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금융회사들이 채권을 사야 시장금리가 떨어지는데 그럴 만한 여유가 없다는 것이다. 실제로 은행들은 자기자본 비율 하락을 막기 위해 오히려 돈을 끌어모으고 있다. 또 자산운용사는 펀드 환매 때문에,보험사는 보험계약 해지 때문에 채권을 살 돈이 없다. 외국인 투자자들도 채권을 사기는커녕 돈을 빼가고 있다. 지난 10~11월 중 외국인의 채권 순매도 금액은 6조원에 달한다.

보다 근본적인 이유는 금융위기와 실물경제 침체로 '부도 공포'가 확산되고 있다는 점이다. 서철수 대우증권 연구위원은 "어느 기업이 망할지 모르는 상황에서 금융회사들이 섣불리 회사채를 살 수 있겠느냐"고 말했다.

이에 따라 금융회사들은 채권 매수 자체를 꺼리거나 사더라도 부도 위험이 없는 국고채만 편식하고 있다. 그 결과 국고채와 회사채 금리 차이는 갈수록 벌어지고 있다. 지난 9월 '리먼브러더스 사태' 전 1.5%포인트 안팎이던 금리 차이가 지금은 4%포인트가 넘는다.




◆시장금리 당분간 안 떨어질듯

정부와 한은이 최근 10조원 규모의 채권시장안정펀드를 조성하는 등 문제 해결에 나섰지만 아직 이렇다할 효과가 없다. 펀드 조성 자체가 지지부진한 데다 펀드 규모도 충분하지 않다는 것이다. 시장에선 벌써부터 펀드 규모가 30조~40조원 정도는 돼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근본적으로는 기업에 대한 신용 보강과 함께 '살릴 기업은 살리고 죽일 기업은 죽이는' 구조조정이 병행돼야 회사채 시장으로 자금이 흘러들 수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지금 상황에선 한은이 아무리 돈을 풀어도 신용경색으로 인해 돈이 필요한 곳까지 흘러들기 어렵다는 점에서다.

이에 따라 국내 주요 증권사들은 정책금리가 내년 상반기 중 연 3%까지 내리더라도 회사채 금리(3년만기,AA-급)는 상반기 중 연 7%대 후반~연 8%대에서 움직일 것으로 보고 있다. 하반기 금리는 신용경색 완화 여부에 달렸는데 대다수 증권사들이 상반기보다는 하락할 것으로 보고 있다. 대우증권은 회사채 금리가 내년 1분기에 연 8.1%에서 지속적으로 하락해 4분기에는 연 7.3%까지 떨어질 것이라고 밝혔다. 신영증권은 내년 1분기 연 8.0%,내년 4분기 연 6.1%를 예상했다. 반면 삼성증권은 하반기에도 신용불안이 여전해 회사채 금리가 내년에 계속 연 8%대를 유지할 것으로 분석했다.

주용석 기자 hohobo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