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65세 생일을 맞은 두 사람이 있다. 홍길동씨는 25세부터 1년에 400만원씩을 기대수익률 연 8%의 복리식 포트폴리오에 투자했다. 길동씨는 10년간 투자한 뒤 추가 불입 없이 포트폴리오를 현재까지 유지하고 있다. 반면 이몽룡씨는 41세부터 매년 400만원씩을 길동씨와 같은 기대수익률이 나는 포트폴리오에 지금까지 투자하고 있다. 길동씨보다 15년을 더 길게 투자한 셈이다. 동갑내기 친구 사이인 두 사람 중 누가 더 많은 노후자금을 모을 수 있었을까.

1997년 타계한 프랑스의 장 클라멍 할머니는 122년 5개월을 살았다. 생존해 있는 최고령자로 기네스북에 올랐던 미국의 애드나 파커 할머니는 지난달 26일 세상을 떠났는데 그때 나이가 115세였다. 미국 텍사스 의대 노화연구팀 스티븐 어스태드 박사는 10~20년 내 생의학 분야에서 획기적인 진전이 이뤄져 인간 수명이 150세까지 늘어날 것으로 내다봤다.

'인생 100세'는 꿈이 아닌 현실이 됐다. 평균 정년이 55세라는 점을 감안하면 은퇴 이전 살아온 시간만큼을 은퇴 후에도 살아가야 한다는 계산이 나온다. 더군다나 눈앞엔 100년 만에 찾아왔다는 공황의 그림자가 짙게 깔리고 있다. 자신이 은퇴 후 하고 싶은 것이 무엇이며,이를 위해 소득이 있을 때 어떤 준비를 해나가야 하는지를 파악하는 '생애재무설계'가 필요한 이유다.

하지만 한국인들의 은퇴 준비는 낙제점에 가깝다. 피델리티자산운용이 올해 발표한 은퇴백서 '뷰포인트'에 따르면 우리나라 국민의 은퇴준비지수는 100점 만점에 41로 미국 58,독일 56,영국과 캐나다 50,일본 47 등에 비해 뒤처진 것으로 조사됐다.



피델리티자산운용이 최현자 서울대 교수(소비자학과)에 의뢰,분석한 결과 우리나라 근로자가 60세에 은퇴한 뒤 받을 수 있는 평균 연간소득은 1667만원이었다. 이 금액은 60세 근로자의 은퇴 직전 평균소득(4067만원)의 41%에 해당한다. 이에 비해 근로자들이 은퇴 후 실제 생활에서 꼭 필요하다고 예상하는 생활비의 평균은 연 2530만원인 것으로 나타났다. 월 210만원꼴.환갑에 은퇴해 20년간 생활한다고 가정할 때 은퇴자금은 5억~6억원이 될 것이란 게 전문가들의 대체적 관측이다. 대한생명은 현재 35세인 사람이 60세에 은퇴해 20년간 생활한다고 가정할 때 은퇴시점에 최소 5억원이 필요한 것으로 내다봤다. 매월 272만원씩 20년간 필요한 비용을 투자수익률 5%를 가정해 일시금으로 산출한 수치다. 물론 더 장수하고,생활수준이 높을수록 노후자금은 크게 불어난다.

이처럼 은퇴 준비가 마음먹은 대로 안 되고,은퇴 이후 필요한 돈과 실제로 손에 들어오는 돈의 액수가 차이 나는 것은 은퇴를 준비하는 시점이 너무 늦기 때문이다. 최문희 FN스타즈 본부장은 "우리나라는 은퇴를 '늙는다'는 관점에서만 생각하지 '제2의 삶'으로 여기는 문화가 부족하다"면서 "경제나 재무 쪽에 대한 교육이 부족한 것도 생애재무설계의 중요성을 깨닫지 못하는 이유 중 하나"라고 지적했다. 추건수 한경와우에셋 부장은 "기업체에서 생애재무설계 교육을 해주다 보면 '이걸 신입사원 때부터 알았어야 하는데'라며 안타까워하는 40대 직원이 많다"고 덧붙였다.

생애재무설계를 하기로 마음먹었다면 자신의 연령대와 여건에 맞는 목표를 세워야 한다. 목표를 설정한 뒤에는 그에 따른 재무구조를 짜는 것이 필요하다. 분명한 재무계획이 없으면 아는 사람의 권유를 못 이겨 보험에 가입하거나 최신 유행 자산에 투자하기 십상이다.

예상되는 은퇴 후 소득이 지출을 충당할 수 없다면 계획을 수정해야 한다. 은퇴자금을 충분히 모을 때까지 은퇴시기를 연장하거나 투자금액을 늘리기 위해 지출을 적극 통제해 나가야 한다. 무엇보다 이 같은 계획은 구체적이어야 한다. 은퇴 후 소득,필요한 자금,현재 소득과 소비 등 투자에 대한 모든 사항을 숫자로 명확하게 정리해야 한다.

25세부터 10년간 투자한 홍길동씨는 65세가 되던 해 6억7000만원의 자금을 손에 쥘 수 있었다. 반면 41세부터 25년간 투자한 이몽룡씨는 3억6000만원을 모았을 뿐이다. 이자에 이자가 붙는 복리효과 때문이다. 복리는 투자 기간이 길수록 더 많은 과실이 주렁주렁 달리게 마련이다. 은퇴 준비라는 열차에 먼저 올라타는 사람이 셰익스피어 연극 '끝이 좋으면 다 좋다(all's well that ends well)'는 의미를 알 수 있다.

이태훈 기자 bej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