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나가는 서른 여섯 싱글 남현수(차태현)에게 어느 날 찾아온 낯선 방문객들.스물 두살의 미혼모 황정남(박보영)은 그의 딸이고,그녀의 아들인 여섯살 황기동(왕석현)은 그의 손자란다. 마른 하늘에 날벼락 같은 소리에 차근차근 내력을 캐보니 중학 시절,이웃집 누나와 가진 '과속 스캔들'의 소생이다. 딸과 손자의 생김새도 남현수와 영락없는 '붕어빵'이다. 이제부터 '운명의 장난'에 마주한 남현수 삼대의 요절복통 동거가 시작되는데….

강형철 감독의 데뷔작 '과속 스캔들'은 도저히 불가능할 것 같은 '초연소 삼대 가족' 이야기.짜임새 있는 구성과 조화로운 연기에 힘입어 일급 코미디로 거듭났다. 관객들은 시종 웃음을 연발하며 엔돌핀을 경험할 수 있다. 각본과 연출을 맡은 강 감독은 '추격자'의 나홍진 감독과 함께 '올해의 수확'으로 꼽힐 만하다.

세 배우의 연기가 조금도 과장되지 않았지만 웃음을 주는 이유는 정교하게 계산된 상황 때문이다. 라디오 MC인 남현수가 청취자 황정남의 딱한 사연을 접했을 때,아버지를 찾아가라고 말한 것은 너무나 자연스럽다. 아버지가 바로 자신임을 알게 된 그는 어쩔 수 없이 곤란한 상황을 수용하지만,이미지 관리를 위해 이 사실을 은폐해야만 할 처지다. 이 같은 과정에서 주변인들의 오해를 받게 되고,그것이 소동을 불러온다. 부녀 간 갈등과 화해가 보태져 극적 긴장감을 강화하고 웃음의 강도도 높여준다.

만약 '아비' 없이 자란 딸의 아픔이나 그녀의 출현으로 평온했던 일상이 깨져버린 남현수의 고통이 충돌하는 상황이 없었더라면 감동과 웃음의 수위도 낮아졌을 것이다. 이야기는 군더더기 없는 장면으로 연출돼 감정의 리듬감을 살렸고,웃음의 타이밍을 포착하는 데에도 성공했다.

개별 장면 묘사도 재미있다. 삼대의 얼굴 생김새를 살펴보는 대목이 대표적이다. 카메라가 삼대의 쌍거풀 없는 눈매를 비교하고,웃을 때 하나같이 눈이 감겨져 보이지 않는 모습에선 관객들의 허리를 꺾어 놓는다. 딸과 손자의 출현에 따른 남현수의 당혹감을 몽유병에 걸린 손자의 행동으로 비유하는 장면도 재치있다. 수면 상태의 손자가 방안을 돌아다니고,화장실을 들락거릴 때 남현수의 표정을 보면 웃지 않을 수 없다. 4일 개봉,12세 이상.

유재혁 기자 yooj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