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정보고서는 값싼 갱지로
확 줄어든 후원금에 '한숨'

여의도 정가(政街)도 불황의 그늘은 피해가지 못했다. 얼어붙은 지역 경기에 각종 행사가 줄고 연말 의정보고서 '특수'도 사라졌다. 경기 침체에 따른 싸늘한 민심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어서다.

예년 이맘 때면 지역구에서 잡힌 각종 송년 행사로 의원들의 수첩이 빡빡했지만 지금은 사뭇 다르다.

김성조 한나라당 의원(구미 갑)은 "지역구에서 열리는 기수별 송년회,청년회 모임 등으로 정신없이 바빠져야 하는데 올해는 부르는 곳이 줄었다"며 "특히 매년 호텔에서 갖던 송년행사는 싹 사라졌다"고 전했다.

같은당 이주영 의원(마산 갑)은 "매년 성과를 자축하는 지역상공인 모임들이 열렸는데 올 연말은 개최하지 않겠다고 연락이 왔다"며 "기업 실적이 예년 같지 않아 올해는 조용히 넘어가는 분위기"라고 밝혔다.

백원우 민주당 의원(시흥 갑)은 "공단 맞벌이 부부를 위한 아동센터 등 복지시설에 지역 경제인들의 지원이 크게 줄었다"며 "전화로 기부활동을 독려하고 있지만 이마저 부족해 올 연말은 복지시설 점검에 시간을 할애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최근 의원들 사이에서는 타블로이드판 의정보고서가 유행이다. 신문용지로 만들어 기존 팸플릿형 보고서의 반값인 데다 많은 내용을 담을 수 있어서다. 200만~300만원 하는 컨설팅 비용을 아끼기 위해 보좌관들이 직접 의정보고서 문구를 쓰는 경우도 늘고 있다.

강용석 한나라당 의원(마포 을)은 올해 의정보고서를 한 장에 압축해 핵심 당원에게만 배포하기로 했다. 그는 "초선 첫 해인 만큼 8장짜리 팸플릿도 생각해봤지만 다들 어렵다고 난리인데 요란하게 홍보하지 말자고 결론내렸다"고 밝혔다.

빡빡한 후원금 사정에 의정보고서 제작을 미루는 의원도 부쩍 늘었다. 정치컨설팅업체인 인뱅크의 이재술 대표는 "매년 의정보고서 제작 피크가 10~11월인데 의뢰 건수가 절반으로 줄었다"며 "종이값이 오르면서 기존 아트지보다 저렴한 갱지의 수요가 높아졌다"고 설명했다.

예년 같지 않은 연말 후원금 실적에 한숨쉬는 의원도 많다. 한 지역구 3선의원은 "지역 사무실과 당원협의회를 방문하는 학교 선후배나 지인들이 눈에 띄게 줄었다"며 "염치가 없어서 후원금 달라는 말도 못 꺼낸다"고 토로했다.

김유미 기자/하경환 인턴(한국외대 4학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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