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중앙지법이 24일 외환은행 헐값매각 사건 관련자들을 배임죄로 처벌할 수 없다는 결론을 내림에 따라 1심 재판에만 장장 2년이 걸린 외환은행 헐값매각 사건이 일단락됐다.

재판부는 변양호 전 재정경제부 금융정책국장 등의 행위가 개별적으론 일부 부적절했다는 것을 인정했지만 이것이 형법상 배임죄로 처벌할 수 있는 사안은 아니라고 판단했다. 아직 1심 판결이기는 하지만 재판부가 모든 혐의를 무죄로 판단함에 따라 공직자의 재량에 속하는 정책적 판단에 대해 검찰이 여론에 떠밀려 무리한 수사를 한 결과가 아니냐는 지적도 일각에서 제기되고 있다.

이날 재판부 판단의 핵심은 검찰이 제기한 각 공소 사실에 대한 '배임죄의 성립 여부'다. 재판장인 이규진 부장판사는 재판 서두에 "기업들의 경영상 판단은 비록 선의로 결정했어도 해가 되는 경우가 있는 만큼 이는 경영상 판단의 특성으로 고려해야 한다"고 밝혔다. 즉 나중에 피해가 발생했어도 선의에서 비롯된 경영상 판단을 배임죄로 처벌하려면 엄격하게 판단해야 한다는 의미다. 재판부는 2003년 당시 외환은행은 신규 투자가 절실히 필요한 상황이었고 론스타 이외에 외환은행에 1조원 이상의 투자 의사를 밝힌 투자자가 없었다고 봤다. 따라서 변 전 국장 등은 외환은행을 살리기 위해 론스타의 신규 투자를 이끌어 내야 한다는 경영적ㆍ정책적 판단을 했고 이 과정에서 일부 부적절한 행위를 했어도 이것이 형법상 처벌의 대상이 되지는 않는다고 본 셈이다. 재판부는 선고 결과를 읽어 내려가면서 거듭해 "개별적인 행동에서 부적절함은 있었지만 경영적 행위라는 전체적인 틀에서 보면 배임죄로 처벌할 수 없다"고 강조하기도 했다.

재판부는 개별 쟁점에서도 이 같은 기준을 적용했다. 가장 큰 논란이 됐던 외환은행의 BIS(국제결제은행) 자기자본비율 전망치 조작에 대해 재판부는 "외환은행의 전망치가 금감원이 산정한 수치와 다르고 단기간에 상이한 전망치를 제시한 점 등을 들어 부적절한 측면이 있다"는 것은 인정했다. 하지만 "외환은행이 비관적인 BIS비율 전망치를 내놓은 것은 론스타와의 가격협상 과정에서 가격을 고의로 낮추기 위해서가 아니라 신규 투자가 절실히 필요한 상황에서 론스타와의 협상 결렬을 피하기 위해서였다"며 "고의가 없는 만큼 배임죄로 처벌할 수 없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이 밖에 외환은행 인수 가격이 헐값으로 산정됐다는 주장도 받아들이지 않았다. 재판부는 그 근거로 △뉴브리지캐피탈이 투자 의사를 포기하기 전까지 론스타와의 경쟁 구도가 조성된 점 △변 전 국장 등이 잠재적 투자자들과 접촉하는 등 더 나은 투자자를 물색하기 위해 노력한 점 △더 높은 가격을 제시했어도 론스타가 이를 수용할 가능성이 없어 보이는 점 등을 들었다.

검찰은 "피고인들의 배임 행위를 무죄로 판단한 것은 (재판부가) 사실을 오인하고 법리를 오해한 것"이라며 항소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박민제 기자 pmj53@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