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만들기로 한 채권시장안정펀드가 오히려 채권시장의 혼란을 부추기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당장 10조원의 펀드 자금을 어떻게 마련할지 불확실한 데다 한국은행으로부터 신규 자금공급 계획이 빠져 있어 '아랫돌을 빼서 윗돌을 괴는' 미봉책이 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구축 효과 우려

전문가들이 걱정하는 것은 이 펀드가 채권시장의 매도세를 유발할 수 있다는 점이다. 이 펀드는 산업은행 연기금 은행 보험 증권사 등으로부터 자금을 조달해 카드채나 회사채 등을 주로 매입할 전망이다.

문제는 이들 금융회사 역시 자금이 부족한 상황에서 펀드 조성을 위해 돈을 댈 수 있겠느냐는 점이다. 만약 이들 금융회사가 펀드 조성을 위해 신규 채권을 발행하거나 기존에 보유 중인 국고채 등 환금성 좋은 채권을 팔 경우 채권시장의 수급균형이 무너질 수 있다는 것이다. 채권시장 관계자는 "채권시장안정펀드의 회사채 매입을 위해 금융회사들이 국고채를 파는 '구축효과(crowding-out effect)가 나타날 수 있다"며"이에 따라 국고채 금리가 오르면 회사채 금리도 불안해질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실제 채권시장은 금융위원회의 펀드 조성 계획 발표 이후 오히려 혼란이 커지고 있다. 지난 13일 국고채(3년물 기준) 금리가 0.3%포인트나 급등(채권값 급락)한 데 이어 14일에도 0.16%포인트나 뛰었다. 국고채 금리가 뛰면서 회사채(3년물 AA- 기준) 금리도 덩달아 상승,14일에는 0.20%포인트 급등했다. 시중은행 관계자는 "채권시장안정펀드는 정부가 내놓을 수 있는 최후의 카드인데 치밀한 실행계획 없이 '일단 발표하고 보자'는 식으로 낸 것 같다"고 꼬집었다.

반면 금융위 관계자는 "금융사들이 그동안 위험을 피하기 위해 국고채를 필요 이상으로 많이 산 반면 회사채는 거들떠보지도 않으면서 두 채권의 금리차가 너무 벌어졌다"며 "일시적으로 국고채 금리가 오르는 것은 문제될 게 없다"고 반박했다.

또 "이 펀드가 회사채 등을 매입하면 기업들에 실질적으로 자금을 지원하는 효과가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후속조치 불가피

전문가들은 그러나 후속조치가 불가피하다는 입장이다. 특히 발권력을 가진 한은의 참여를 통해 채권시장 밖에서 신규 유동성 공급이 필수적이라고 지적한다. 박종연 우리투자증권 채권애널리스트는 "채권시장안정펀드가 실효성을 거두려면 한은이 환매조건부(RP) 방식으로 채권을 매입하는 등 신규 자금지원이 수반돼야 한다"고 말했다.

한은은 당초 채권시장안정펀드를 통해 카드채와 같은 제2금융권 채권 등 신용도가 떨어지는 채권을 매입하는 데 대해 소극적인 입장었다. 하지만 한은 내부에선 펀드가 조성되면 '결국 한은도 협조할 수밖에 없을 것'으로 보는 시각이 많다.

정부와 한은이 자꾸 불협화음을 내는 것이 부담스러운 데다 채권시장안정펀드가 실패하고 채권시장의 혼란이 커지면 한은도 그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는 점에서다.

금융위 관계자는 이와 관련,"신규 유동성을 공급하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지만 관련부처들과 협의가 끝나지 않아 지금은 뭐라고 말할 단계가 아니다"고 말했다

주용석/정재형/강지연 기자 hohobo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