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시장 불안과 실물경제 침체에다 정부가 약속한 각종 규제 철폐까지 지연되면서 대기업들의 내년도 투자계획이 표류하고 있다. 주요 기업의 설비투자 계획과 인수·합병(M&A) 전략 모두 내년 초에나 윤곽이 드러날 것이란 우려가 확산되는 상황이다.

9일 업계에 따르면 대부분 기업들은 내년 투자계획에 손도 대지 못해 고용 규모와 생산시설 가동 계획,사업 부문별 매출 목표 책정이 연쇄적으로 늦어지고 있다. 삼성그룹 고위 관계자는 "책상 위의 사업계획서에는 목차만 있을 뿐 숫자는 하나도 없다"고 전했다. 특히 금융권과 연계한 프로젝트 파이낸싱(PF) 사업의 경우 당분간 투자계획 수립 자체가 불가능한 상황이다.

실물경제 악화도 기업들의 사업계획 수립을 어렵게 하고 있다. 4분기 들어 국내 선사들의 미주노선 물동량이 지난 3분기에 비해 20% 안팎 줄어드는 등 주력 시장에 대한 수출이 갈수록 위축되고 있다. 수출 주력 품목인 반도체 액정표시장치(LCD) 자동차 업종은 미국과 유럽의 동반 침체 가능성을 우려하고 있다. 일찌감치 크리스마스 특수가 사라진 데 이어 내년 상반기 수출 전망까지 어두워지면서 판매 확대는커녕 재고 관리를 걱정해야 할 판이다.

경제 관련 법령의 연내 국회 통과가 불투명한 점도 투자 의욕을 꺾는 또 다른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일부 기업들은 설비투자를 줄이는 대신 M&A 시장에 뛰어들 채비를 하고 있지만 출자총액제한 폐지를 담은 공정거래법 개정안의 연내 국회 처리가 불투명한 상황이다.

법인세율 인하와 공장·본사 지방 이전시 과세특례 일몰 연장 등의 법령과 수도권 규제완화 등도 야당의 반대 등으로 제대로 논의가 이뤄지지 않고 있다.

조일훈 기자 ji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