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우리나라의 외환보유액이 사상 최대 규모인 274억2천만 달러가 급감해 외환시장에 미칠 영향이 주목된다.

외환보유액은 4월 37억6천만 달러 감소를 시작으로 5월 22억8천만 달러, 6월 1억 달러, 7월 105억8천만 달러, 8월 43억2천만 달러, 9월 35억3천만 달러 등 7개월 연속 줄었다.

10월 감소분은 이전 6개월치 감소분을 모두 합한 규모(245억7천만 달러)보다 크다.

한은은 국제 금융시장 불안으로 외화 조달에 어려움을 겪는 은행권에 달러를 대거 공급하고 유로화와 파운드화 약세로 달러 환산액이 감소한 이례적인 요인이 크다고 설명했다.

전문가들은 외환보유액 감소가 외화 자금난 해소를 위한 당국의 선제 대응에 따른 것인 데다 한국과 미국 간 통화스와프 협정 체결 이후 외화자금 시장이 안정을 되찾고 있어 시장 불안을 초래하지는 않을 것으로 관측했다.

그러나 급한 불을 끈 상황에서 외환보유액이 추가로 급감하면 시장 불안이 재현될 수 있기 때문에 적절한 관리가 필요하다고 주문했다.

◇ 외환보유액 급감 원인은
한은은 외환보유액 급감의 원인으로 은행권에 대한 달러 유동성 공급, 유로화와 영국 파운드화 등 기타 통화의 약세에 따른 달러 환산액 감소를 꼽았다.

예전처럼 외환시장 개입을 위해 보유 달러를 소진한 것이 아니라는 설명이다.

정부와 한은은 최근 미국발 금융위기로 달러난이 심화되자 200억 달러 이상을 외화유동성 공급에 사용했다.

지난달 정부는 스와프시장과 수출입은행을 통해 150억 달러를 풀었고 두 차례 경쟁 입찰로 총 27억 달러를 지원하는 등 전체 유동성 공급 예정액(약 450억 달러)의 절반을 쏟아냈다.

유로화 등 기타 통화가 달러화에 대해 약세를 보이면서 이들 통화로 표시된 자산의 달러 환산액이 감소한 것도 주원인으로 한은은 분석했다.

한은은 외환보유액의 통화별 운용현황을 공개하지 않고 있다.

다만, 작년 말 현재 미 달러화 자산의 비중은 64.6%이며 나머지는 유로화, 엔화, 파운드화 등 주요 선진국 통화들에 투자돼 있다.

기타 통화 자산이 3분의 1에 달하는 상황에서 기타 통화의 약세는 보유액 감소의 큰 요인이 된다.

10월 중 유로화와 파운드와는 달러화에 대해 9.4%씩 절하됐다.

국민연금과의 통화스와프 조기 해지에 따른 증가분(50억 달러)과 운용 수익 등 증가 요인이 있었던 것을 감안하면 기타 통화 약세로 인한 감소분이 상당하다는 설명이다.

한은 김윤철 국제기획팀장은 "기타 통화 약세에 따른 감소분을 밝힐 수 없지만 생각보다 매우 크다"며 "이는 달러로 환산된 금액이 감소했다는 것으로 실제 보유 자산이 줄어든 것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 보유 달러 감소 지속할까
외화보유액이 줄어들고 있지만 최근 호재도 잇따르고 있어 감소세를 지속할지는 지켜봐야 할 것으로 보인다.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와 300억 달러 한도의 통화스와프를 체결함에 따라 보유액 감소 없이 시중에 달러를 공급할 수 있는 여유자금이 생겼다.

특히 경상수지가 10월부터 흑자로 돌아설 것으로 예상되는 점이 긍정적 신호다.

9월 경상수지 적자는 전월의 약 47억 달러에서 12억 달러로 급감했다.

10월에는 10억 달러 이상의 흑자를 낼 것으로 한은은 추정하고 있다.

문제는 달러화 강세의 지속이다.

유럽과 일본의 경기가 미국보다 더 가파르게 급랭하면서 유로화와 파은드화가 달러화에 대해 약세를 면치 못하고 있다.

시중의 외화유동성이 완전히 해소되지 않은 상황에서 한은이 매주 경쟁 입찰 방식의 스와프 거래로 달러를 공급하고 있는 점도 감소 요인이 된다.

다만, 스와프 거래는 만기가 끝나면 한은이 달러를 되받기 때문에 결국은 외환보유액으로 채워진다.

삼성경제연구소 장재철 수석연구원은 "10월에는 국제 금융불안이 최고조에 이르면서 유로·파운드화 등이 초약세였는데 금융불안이 진정되고 있어 기타 통화 약세에 따른 감소 폭은 크게 줄 것"이라며 "여기에 미 FRB와의 통화스와프 체결, 경상수지 흑자 등 플러스 요인이 있어 보유액이 10월처럼 급감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 적정 보유액 논란 재현되나
정부 곳간에 있는 달러가 계속 줄어들면서 적정 외환보유액 논란이 재현될 가능성이 있다.

지난달 말 외환보유액이 2천122억5천만 달러로 6월 말 기준 2천223억 달러인 유동외채 규모를 밑돌기 때문이다.

일각에서는 단기외채에 1년 내 만기 도래하는 장기외채를 합한 유동외채를 근거로 가용 외환보유액이 사실상 바닥났다는 의견을 내놓고 있다.

정부가 7월 말 현재 375억 달러에 달하는 외화예금에 대해서도 원리금을 보장키로 한 점도 외환보유액 소진 우려를 키울 수 있다.

미국 모기지 업체인 패니메이와 프레디맥의 채권에 투자한 외환보유액이 370억~380억 달러로 알려진 점 역시 논란을 부추길 수 있는 요인이다.

전문가들은 그러나 최악의 상황만을 가정해 외환보유액을 일정 수준 이상 유지할 필요는 없다고 말했다.

외환보유액은 위기 극복을 위해 사용하는 비상금으로, 목적에 맞게 쓰다 일부 줄어들었다고 해서 문제 삼을 필요가 없다는 설명했다.

다만, 한국과 미국 간 통화스와프 협정 체결 이후 외화자금 시장의 경색 현상이 완화되고 있는 만큼 지난달과 같이 급격한 외환보유액 감소세가 지속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지적했다.

LG경제연구원 배민근 연구위원은 "유동외채를 전부 당국이 갚아야 한다는 가정에 근거를 둔 적정 외환보유액 주장보다 은행의 외화조달 마비와 같은 눈앞의 불을 꺼야 한다는 현실론이 힘을 얻는 것 같다"며 "한미 간 통화스와프 협정으로 급한 불을 껐기 때문에 앞으로는 외환보유액 감소 폭이 둔화하도록 관리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 환율에 미치는 영향은
외환시장 참가자들은 외환보유액 감소세가 둔화할 경우 환율에 미치는 영향이 크지 않을 것으로 분석했다.

지난달 외환 스와프시장 안정을 위해 달러화를 공급하면서 외환보유액이 급감했지만 스와프시장이 안정될 기미를 보이고 있어 외환보유액의 투입 규모가 줄어들 수 있다는 관측이다.

현물환과 선물환의 격차인 스와프포인트 3개월 물은 9월26일 -2.00원에서 지난달 10일 -29.00원까지 폭락하고 나서 외환보유액을 동원한 당국의 개입으로 이달 3일 현재 -15.50원을 기록하고 있다.

원화를 주고 3개월 동안 달러화를 빌리려는 수요가 줄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스와프포인트 하락은 원.달러 환율에도 심리적인 하락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

외환은행 김두현 차장은 "외화자금 수요가 많은 연말을 대비한 은행들의 외화조달이 어느 정도 마무리되면서 스와프포인트가 완만하게 상승할 것으로 보인다"며 "당국의 선제 대응에 따른 외환보유액 감소를 외환시장 불안 요인으로 해석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김 차장은 "원.달러 환율은 한미 간 통화스와프 협정 이후 급등세가 한풀 꺾인 것 같다"며 "당분간 큰 폭으로 등락하면서 1,300원을 넘나들 수 있겠지만 등락 폭은 차츰 줄어들 것"이라고 전망했다.

(서울연합뉴스) 최현석 이준서 기자 harrison@yna.co.krjun@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