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르만 지몬 교수ㆍ이희범 무협회장 특별대담

"경제위기 때 시장이 재편된다. 히든 챔피언(잘 알려져 있지 않지만 세계적으로 강한 기업)은 이런 위기상황에서도 이익을 낸다. " '유럽의 피터 드러커'로 불리는 독일의 세계적인 경영학자 헤르만 지몬 교수는 위기상황에선 성장이 둔화될 수 있지만 히든 챔피언들은 상대적으로 수익을 더 낼 수 있다며 위기 속에서 기회를 잡을 것을 당부했다. 3일 서울 워커힐호텔에서 열린 '제1회 기업가정신 국제 컨퍼런스' 참석차 방한한 그는 한국경제신문이 마련한 이희범 무역협회장과의 특별대담에서 "한국도 강소(强小)기업을 양성해 사라져가는 기업가 정신을 살려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국에서도 2만권이 넘게 팔린 베스트셀러 '히든 챔피언'의 저자인 지몬 교수와의 대담은 고광철 한경 부국장 사회로 진행됐다.

[ 사회 : 고광철 한경 부국장 ]

◆사회=금융위기와 불황으로 '기업가 정신'이 사라지고 있다는 우려가 적지 않다. 이런 시기에 '기업가정신 국제컨퍼런스'를 갖는 의미가 커 보인다.

◆이희범 회장 = 10여년 전 한국은 세계적인 석학 피터 드러커 교수로부터 '세계에서 가장 기업가 정신이 뛰어난 국가'라고 평가받았다. 하지만 IMF 외환위기 이후 신성장 산업이 줄고 반기업 정서가 심화되면서 기업인들의 사기가 떨어졌다. 이번 국제 컨퍼런스를 통해 기업인이 존경받고 창업 열기가 충만한 사회 분위기가 조성되길 기대한다.

◆사회=지몬 교수는 한국의 기업가 정신을 어떻게 평가하는지.

◆지몬 교수=포스코,삼성전자,현대 등 글로벌 기업의 성장 비결은 높은 기업가 정신이었다. 하지만 중소기업의 활약을 찾기 어려운 것이 아쉽다. 최근 한국의 한 비즈니스 스쿨을 방문했더니 학생들 대부분이 기업을 직접 차리기보다는 대기업에 들어가길 희망했다. 이에 반해 독일은 중소기업을 중심으로 경제가 돌아간다. 한국의 세 배에 이르는 독일의 수출량 역시 작지만 강한 '강소기업'의 숨은 활약이 뒷받침하고 있다.

◆사회=경제상황이 급변하고 있는 요즘 기업가 정신을 어떻게 정의할 수 있는가.

◆지몬 교수=기업가 정신의 핵심은 국가와 시대를 초월한다. 첫째 예술가의 정체성과 같은 뚜렷한 목표를 가져야 한다. 둘째 한 가지에 집중하는 전문화다. 셋째 수십년을 내다보는 열정과 끈기다. 마지막으로 다른 사람들에게도 영감을 줘야 한다. 세계적 기업들의 공통점은 직원들과 비전을 공유한다는 것이다.

◆이 회장=절삭공구를 생산하는 YG1,오토바이 헬멧업체인 HJC 등 한국판 히든 챔피언도 등장하고 있다. 무역협회가 한국경제신문과 공동으로 매달 이 같은 수출 중소기업을 발굴,발표하고 있다. 더 많은 강소기업이 나와야 한다.

◆사회=저서 '히든 챔피언'에 나온 강소기업 2000개 중 1200개가 독일 기업이다. 비결이 궁금하다.

◆지몬 교수=독일의 한 지역의 경우 전통 뻐꾸기 시계 생산에서 시작해 지금은 400개가 넘는 기업이 의료기기를 만들고 있다. 어떤 지역은 안전벨트의 스프링 장치 생산지로 특화했다.

◆이 회장=예전에 브뤼셀에서 근무하면서 독일권 국가들의 천부적인 장인정신을 지켜봤다. 독일의 이공계 우대정책도 빼놓을 수 없다. 1인당 수출량이 한국의 두 배에 이르는 등 수출 지향적 경제구조도 부러운 점이다.

◆사회=새로 시작하는 중소기업에 조언을 한다면.

◆지몬 교수= 중소기업이 성공하려면 우선 전략적 차원에서 야심적인 목표를 세워야 한다. 한 가지 전문 분야에 집중하고 기술 혁신을 이루는 것도 필수다. 한 분야나 제품에서 세계 1등에 오른 히든 챔피언의 혁신성은 대기업보다 다섯 배나 높다. 특허취득건수와 고객과의 친밀도에서도 대기업을 훨씬 앞선다. 다만 한국과 일본 등 아시아의 히든 챔피언은 독일과 달리 글로벌 통상 네트워크가 부족하다는 점이다. 대기업에 기대기보다는 자회사를 통해 국제 네트워크를 만들어야 한다.

◆사회=히든 챔피언을 양성하기 위해 정부가 할 일은 무엇인가.

◆지몬 교수=정부 스스로 히든 챔피언을 만드는 것은 불가능하다. 중요한 것은 교육이다. 독일은 이론과 실전을 조화하는 시스템이 정착돼있다. 직업훈련시 1주일에 3일은 기업에서 실제 업무를 익히고 2일은 이론을 배우는 식이다. 이 같은 고숙련 근로자 양성 프로그램을 독일 정부가 운영하고 있다. 기업을 존경하는 문화도 중요하다. 독일에서는 중소기업 협회장이 대기업 회장만큼 우대받는다. 미국과 한국이 유사한 점은 금융 분야에 비해 과학기술 분야에서 인력의 양과 질이 부족하다는 점이다. 기술과 경영의 조화가 필요하다.

◆이 회장=동감한다. 묵묵히 한 업종에 집중하는 히든 챔피언을 우대해야 한다. 이들 중소기업이 당대에 끝나지 않고 대대로 승계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기술이 손끝에서 피를 통해 흘러갈 수 있도록 도와줘야 한다.

◆사회=미국발 금융위기로 기업의 운신 폭이 예전 같지 않다. 강소기업으로 위기를 타개할 수 있을까.

◆지몬 교수=위기는 언제나 기회다. 히든 챔피언들은 위기 때 오히려 이익을 낸다. 중소기업은 경기에 따라 생산전략에 유연성을 발휘하는 게 중요하다.

정리=김유미 기자 warmfront@hankyung.com/채상원 인턴(한국외대 3학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