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펀드 반토막…이사계획 접었어요"


거래끊긴 주택시장, 주가폭락 '후폭풍'까지…

서울 서초구 잠원동 동아아파트 105㎡형에 사는 김 모씨는 얼마 전까지 반포주공 3단지를 재건축한 '반포자이'단지의 115㎡형으로 이사를 준비했다가 계획을 완전히 접었다. 새 아파트 마련 자금을 펀드에 넣어뒀는데 주식시장이 폭락하면서 투자금의 60%를 잃었기 때문이다.

김씨는 지난해 주식값이 크게 오를 때 3억원을 투자했다. 그러나 지금 손에 쥘 수 있는 돈은 1억2000만원에 불과하다. 1년 전만 하더라도 김씨는 반포자이 입주를 당연한 것으로 생각했다.

기존 아파트를 8억원 후반에 팔고 펀드에 있는 돈 3억원을 더하면 11억원대 아파트라도 매입할 능력이 충분하다고 여겼다. 하지만 지금은 집값까지 9억원에서 7억원으로 떨어져버렸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집값을 구할 방안이 떠오르지 않아 마음을 접었다. 최근 주식시장이 호전되는 모습을 보이고 있지만 웬만큼 올라서는 새 아파트 구입 기회를 찾을 수 없을 것 같아서다.

코스피지수가 고점 대비 절반으로 추락하면서 이사 계획을 포기한 사람들이 크게 늘고 있다. 서초구 반포동의 한 공인중개사는 "집을 사겠다고 매물을 알아봐달라고 했다가 펀드 투자에 실패해 구매 의사를 철회한 고객이 수십명에 달한다"며 "가뜩이나 어려운 주택시장에 주가 폭락 후폭풍까지 겹쳐 거래공백을 심화시키고 있다"고 31일 말했다.

서울 강남권 입성을 노렸던 강북권 거주자들 가운데 여윳돈을 펀드에 묻어둔 사람은 땅을 치고 있다. 금융업체에서 일하는 박 모씨는 강북권 집값이 오르고 강남권은 떨어져 강남으로 이사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라고 여겼으나 펀드가 발목을 잡았다. 중국펀드에 3억원을 쏟아부었으나 70%가량 하락하는 바람에 2억원을 날렸다. 노원구 중계동 건영아파트 105㎡형을 5억원대 중반에 팔고,펀드를 환매하면 서초구와 강남구의 괜찮은 아파트를 살 수 있었지만 지금은 어림도 없다.

일선 중개업자들은 매매 수요뿐만 아니라 전세 수요자들도 타격이 크다고 전한다. 특히 좀 더 큰 전셋집으로 옮기려는 사람들의 경우 주식이 망가지면서 눌러앉는 사례가 급증하고 있다고 입을 모은다.

건설업체들도 펀드 급락 여파로 중도금.잔금이 제대로 들어오지 않아 골머리를 앓고 있다. 대형 A건설업체 관계자는 "펀드 하락으로 돈이 없으니,중도금과 잔금 납부기간을 연기해 달라는 계약자가 크게 늘었다"며 "연체이자를 부과해야 하는데 입주 예정자들의 사정이 어렵다고 하니 난감하다"고 털어놨다.

중견 B건설업체 관계자는 미분양 털어내기가 더 어려워졌다며 볼멘소리를 했다. 이 관계자는 "관심 고객으로 등록한 사람들에게 안내전화를 하면 주식 투자로 돈을 잃어 아파트 살 돈이 없다는 사람들이 많다"며 "미분양을 찾는 수요가 없는 상황에서 고객들의 주머니까지 얇아져 걱정이 이만저만 아니다"고 말했다. 이 같은 상황은 2년 전 주식시장이 활황이었을 때와 비교하면 완전히 반대 현상이다. 당시에는 주식가격이 오르고 있으니,계약기간을 조금만 늦춰달라는 요구가 빗발쳤다.

스피드뱅크 박원갑 소장은 "주택마련 종자돈을 은행이 아니라 펀드에 넣어뒀던 사람들이 후유증을 매섭게 앓고 있다"며 "주식 과열 바람을 타고 투자 안전성을 소홀히 했던 것이 패착이었다"고 설명했다.

박종서 기자 cosmo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