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은 그 시대를 가장 정직하게 비추는 거울이다. 그 속에 들어 앉은 풍경이나 인물들의 숱한 이야기까지 말없이 대변한다. 그런 점에서 사진은 역사의 명암을 시각언어로 표현한 한 편의 산문이자 시이기도 하다. 특히 빛바랜 옛날 사진 한 장이 전하는 '시간'의 의미는 더욱 값지다.

<경성,사진에 박히다>는 개항 이후 일제 강점기의 한국 근대문화사를 공감각적으로 재구성한 책이다. 사회문화비평지인 계간 '황해문화'에 3년간 연재한 '근대 사진 문화의 풍경'을 다시 묶은 것.저자는 이경민 사진아카이브연구소 대표.그가 보여주는 100여년 전의 우리 모습이 지금과 참 많이 닮았다.

하얼빈역에서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한 안중근 의사의 사진이 당시 일본에서 불티나게 팔렸다는 이야기는 요즘 티셔츠와 기념품에 새겨진 체 게바라를 떠올리게 한다. 처음에는 경각심을 일깨우기 위해 범죄자 사진엽서로 제작되었지만 일제의 의도와는 달리 너무나 잘 팔려나갔다. 정치 거물 이토 히로부미를 죽인 안중근이 일본에서는 '이토 암살자',조선에서는 '충신'으로 각각 시대의 아이콘이 된 것이다. 다급해진 일제는 부랴부랴 판매를 금지시켰다. 안 의사의 사진은 미국과 러시아에서도 판매됐다.

하와이 한인 이주의 역사가 담긴 '사진 결혼' 이야기도 흥미롭다. 농촌 총각들이 동남아 여성들의 사진과 신상명세만 보고 점찍어 결혼하기로 결정하는 요즘의 국제결혼과 비슷하다. '부자랑 결혼할 수 있다'는 감언이설에 속아 하와이로 갔다가 모진 고생을 견디지 못해 돌아오는 여성들도 상당수였다니 더욱 기가 막힌다.

서대문 형무소에 갇힌 만해 한용운 선생과 유관순 열사의 수형기록 사진,조선 최초의 항공사진,경성 최초의 사진관,서양식 코트와 가죽장갑으로 치장한 기생들의 모습,'몰카'를 이용해 목욕탕에서 여성들의 알몸을 찍으려다 붙잡힌 청년 6명의 엽기사건,죽기 전날 사진관에서 사진을 찍고 자살한 임신 3개월 여성의 이야기까지 근대 한국의 사회상이 애잔하게 펼쳐진다.



당시로서는 파격적인 포르노 사진 광고,베스트셀러를 기록한 불법복제 에로 사진,포르노 사진과 서적에 빠진 여학교 교사 등 씁쓸하기도 하고 우습기도 한 그 시절의 단면이 21세기 한국의 현주소 위에 오버랩된다.

고두현 기자 kd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