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동차 부품] 뛰는 단속, 나는 짝퉁‥필터·브레이크패드부터, 검사필증 홀로그램까지 위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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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반기만 65만여개 적발…작년보다 두배이상 늘어
일부 부품판매상·정비업자들 차익 노리고 불법유통
"현대차나 기아차 엔진을 만들어줄 수 있습니다. 변속기도 가능하고요. "
작년 5월 중국에서 열린 상하이 모터쇼에 참석한 현대모비스 관계자들은 깜짝 놀랐다. 현지 부품사 부스에 들어가 "현대·기아차의 엔진을 만들어줄 수 있느냐"고 넌지시 묻자 "물론이다"는 자신 있는 대답이 돌아왔기 때문이다. 부품 전문가들은 "예전엔 짝퉁부품 제조업체들이 필터 같은 간단한 소모성 제품만 만들었는데,이젠 핵심부품까지 못 만드는 부품이 없을 정도"라며 혀를 내둘렀다.
작년 7월 중국 장쑤성 상주시에서는 때 아닌 작전이 벌어졌다. 짝퉁부품을 생산하고 있다는 첩보를 접수한 공안 당국 직원 50여명이 현장을 급습한 것이다. 이날 단속에 동행한 현대모비스 직원들은 건평 200여평의 공장과 최신식 생산설비,정밀하게 위조된 포장재,상표라벨 등에 놀랄 수밖에 없었다.
이날 압수한 부품은 현대·기아차의 레저용차량(RV)인 투싼과 싼타페,스포티지에 장착되는 앞뒤 범퍼가드와 사이드스텝이었다. 완제품과 포장재를 합해 2.5t 트럭 5대가 넘는 엄청난 분량이었다. 유명철 현대모비스 시장관리팀 차장은 "범퍼가드와 사이드스텝은 RV 차량 소유주라면 누구나 장착하고 싶어하는 필수 아이템"이라며 "수요가 많은 제품을 빠른 시간 안에 대량 생산해 시장에 공급하는 전형적인 짝퉁부품 유통 사례"라고 말했다.
짝퉁부품 공포가 되살아나고 있다. 지난 5월 경기지방경찰청 광역수사대는 모조품에 특허등록 상표를 붙여 불법 유통시킨 부품상인 2명을 입건했다. 이들은 자동차 연료필터와 오일필터 등 모두 1100여점,8000만원 상당의 짝퉁 부품을 만든 것으로 드러났다.
국내 짝퉁 부품의 진원지는 중국이다. 지식재산권에 대한 감독당국의 감시활동이 촘촘하지 못한 탓이다. 중국산 짝퉁 부품은 현지뿐만 아니라 아중동 지역 등에서 광범위하게 유통되고 있다.
올 상반기 국내외에서 적발된 짝퉁 부품은 총 65만여개.작년 적발된 30만여개보다 두 배 이상 늘어났다. 적발되지 않은 짝퉁 부품의 규모가 통상 5~6배 많다는 점을 감안하면 중국산 짝퉁부품 시장 규모는 상상하기 어려울 정도다.
더 큰 문제는 중국산 저질 부품이 현지에서 1차 제조된 후 국내로 반입돼 재포장 작업을 거친다는 사실이다. 원산지가 한국산으로 바뀌는 것이다. 국적 세탁을 통해 한국산으로 재탄생한 중국산 부품은 제3국으로 상당량 재수출된다. 2004년 기준으로 560억원 상당의 부품이 중국으로부터 수입됐고,이 중 80% 이상이 해외로 재수출된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2003년 11월 부산 세관에서 수입 통관을 대기 중이던 프라이드 가짜 클러치디스크류(6000여점)가 적발됐다. 이 제품들은 국내 수입 후 이란으로 재수출될 예정이었다. 제품부터 포장에 이르기까지 쉽게 식별할 수 없을 정도로 정교하게 복제됐다. 하지만 품질 테스트 결과 변속기에 큰 문제를 유발할 수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2004년 5월에는 경기도 남양주에 있는 자동차 부품 수출입 업자가 저질 브레이크 패드에 중국으로부터 수입한 가짜 검사필증을 부착해 만든 짝퉁 부품을 수출해오다 적발됐다. 이 사건으로 상대적으로 복제가 어려운 홀로그램 검사필증조차 중국에서 위조되고 있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2004년 6월 경기도 파주 소재 자동차 부품 수입업자는 중국으로부터 가짜 전조등을 수입하다 적발됐는데,전문가도 쉽게 식별할 수 없을 정도였다. 하지만 실제로 장착하면 후방 운전자의 시야를 교란하고 램프 렌즈의 경도가 약해 작은 충격에도 파손됐다.
2008년 2월에는 중국산 저질 볼베어링이 군 당국에 납품되는 사건이 발생했다. 압수물품 규모는 8억원 상당이었다. 2.5t 및 5t 군용트럭 바퀴에 장착되는 볼베어링 40여종 4만여개에 달했다. 이 볼베어링은 유사 상표를 도용해 국제적인 품질 인증을 받지 않은 부품이었다. 외부 시험평가 결과 21개 항목 가운데 18개가 인증 기준에 미달했다. 차량이 전복사고 위험에 노출될 수 있었다.
과거에는 위조가 쉬운 브레이크패드 및 필터류를 중심으로 짝퉁 부품이 만들어졌지만,지금은 에어백과 같은 고도의 기술을 필요로 하는 품목을 제외한 거의 모든 부품이 복제되고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전언이다.
이 같은 모조품은 외견상 순정부품과 유사하지만,품질 수준은 30% 이상 낮다. 운전자 안전에 치명적인 영향을 줄 수 있다는 것이다. 소비자 입장에서는 중국산 짝퉁부품을 선호할 만한 뚜렷한 품질 및 가격상 이점이 없지만,유통 마진에 대한 높은 차익을 챙기기 위해 일부 부품판매상과 정비업체들이 중국산 짝퉁 부품을 불법 유통시키고 있다.
현대모비스 관계자는 "짝퉁 부품은 운전자 안전에 치명적인 위해를 가할 뿐만 아니라 기업 신뢰도 및 국가 이미지를 실추시키는 심각한 범죄 행위"라고 강조했다.
조재길 기자 road@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