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행이 27일 내놓은 '패키지 금융대책'은 일종의 충격 요법이다. 기준 금리만 해도 그렇다. 한은은 그동안 기준 금리를 0.25%포인트씩 아장아장 움직이는 '베이비 스텝(baby step)' 전략을 썼다. 가령 경기가 나쁘면 기준 금리를 일단 0.25포인트 내려보고 물가 등에 미치는 영향을 살핀 뒤 큰 문제가 없다고 생각하면 나중에 추가로 0.25%포인트를 더 내리는 식이다. 하지만 이번엔 걸음걸이가 통째로 달라졌다. 시장에선 당초 기준 금리 인하폭을 최대 0.5%포인트로 예상했다. 하지만 한은은 0.75%포인트라는 유례 없는 인하폭으로 시장을 놀라게 했다.

◆충격요법 왜?

한은이 충격 요법을 내놓은 것은 '웬만한 대책은 먹히지 않는다'는 판단에 따른 것으로 보인다. 그만큼 금융시장 불안이 심각하다는 의미다.

특히 지난 주말 코스피지수 1000포인트 붕괴와 미국 및 유럽증시 급락으로 금융시장은 극도의 공포감에 휩싸였다. 토요일인 지난 25일 밤 강만수 기획재정부 장관과 전광우 금융위원장,이성태 한은 총재 등 '경제정책 3인방'이 모인 데 이어 일요일인 26일 오전에는 이명박 대통령이 주재하는 '긴급경제상황 점검회의'가 열렸다.

그러나 27일 오전 8시 소집된 긴급 금통위는 시장의 예상을 뛰어넘는 0.75%포인트 인하 결정을 내놨다. 또 기준 금리 인하에 이어 5조~10조원 규모의 은행채 매입,총액한도대출 금리 0.75%포인트 인하,키코 피해 기업에 대한 외화대출 허용 및 기존 외화대출 만기 1년 연장 등 '패키지 대책'을 쏟아냈다. 금융위기 해소를 위해 '할 수 있는 것은 다 하겠다'는 제스처를 취한 것이다.

◆0.75%포인트 인하 효과는

한은이 기준 금리를 대폭 인하한 것은 실물경제 침체가 예상보다 심각할 수 있다는 판단 때문이기도 하다. 국내 경제성장률은 지난 3분기 3.9% 성장에 그치면서 3년여 만에 처음으로 3%대 성장에 머물렀다. 내년에는 2%대 성장에 그칠 것이란 우려마저 나오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기준 금리를 0.25%포인트 찔끔찔끔 인하해서는 금융시장에 별다른 신뢰를 주지 못하는 데다 경기 침체를 막는 데도 한계가 있을 것이란 판단을 한 것으로 보인다. 0.25%포인트씩 세 번 걷는 '베이비 스텝'보다는 한 걸음 성큼 내닫는'빅 스텝(big step)'만이 시장의 패닉을 어느 정도는 막을 수 있다고 봤다.

이성태 한은 총재는 금통위 이후 기자간담회에서 "금융시장 불안이 내수 부진을 심화시켜 경제 성장을 크게 위축시킬 우려가 있기 때문"이라고 파격적인 금리인하 배경을 설명했다. "이럴 때 기준 금리를 평소에 비해 상당히 큰 폭으로 인하함으로써 내수경기 위축과 경제성장률의 급속한 하락을 완화하는 데 기여하겠다는 생각"이라고 말했다. 시장이 예상했던 것 이상의 충격을 가함으로써 꺼져가는 심장을 되살리는 요법인 셈이다.

한은은 기준 금리를 0.75%포인트 인하할 경우 향후 3년간 연평균 경제성장률이 0.36%포인트 늘어날 것으로 예상했다. 당장 효과가 나타나는 것은 아니지만 분명 경제를 되살리는 효력이 있다는 것이다. 반면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0.33% 높아지는 것으로 분석했다.

신민영 LG경제연구원 금융연구실장은 "기준 금리 0.75%포인트 인하 외에 다른 유동성 대책들을 패키지로 내놓음으로써 시장 심리의 급격한 악화를 막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며 "무엇보다 가계와 중소기업의 금리 부담을 직접적으로 줄이는 효과를 볼 수 있다"고 평가했다.

물론 내수 경기가 부진한 가운데 세계 경기 둔화로 수출마저 둔화되고 있어 국내 실물경제가 단기간에 회복될 수 있을지도 불확실하다. 배상근 한국경제연구원 연구원은 "일반적으로 이런 경제 충격이 왔을 때 회복하는 데는 4~5년 걸린다"면서 "특히 한국은 수출 둔화에 따라 어려움을 겪을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주용석 기자 hohobo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