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색창연한 쓰루가성·반다이산 풍경 압권
일본 전통여관 료칸에서 온천욕 氣가 뚫려
후쿠시마는 번잡스러움에서 벗어나 여유롭게 일본을 즐기려는 사람들에게 알맞은 여행지다. 겨울에 눈으로 은세계가 되는 동북지방답게 수십 개의 스키장이 몰려 있으며 골프 리조트도 60여개나 된다. 골프와 스키를 목적으로 찾지 않더라도 계절마다 다른 표정을 가진 후쿠시마에는 볼거리가 많다.
쓰루가성은 반다이산과 함께 후쿠시마를 대표하는 명소다. 14세기 에도시대에 완성된 성은 메이지유신 때 불타 1965년 현재의 모습으로 복원됐다. 성을 둘러싼 돌담만이 수백년의 세월을 간직하고 있다. 쓰루가성으로 들어가는 언덕길에 늘어선 커다란 벚나무들이 봄에는 장관을 이룬다. 성의 맨 꼭대기 5층 천수각에 오르면 아이즈와카마쓰시가 한눈에 내려다보인다. 성 내부는 마지막 영주의 유물 등이 전시된 향토박물관으로 꾸며져 있어 에도시대 삶의 모습을 짐작해볼 수 있다.
오우치주쿠는 에도시대 사무라이들이 묵던 여인숙촌.300m쯤 되는 거리에는 초가와 목조로 된 전통 가옥들이 두 줄로 마주보고 늘어서 있다. 우리나라의 완만한 초가지붕과 달리 눈이 쌓이지 않도록 가파른 세모꼴 지붕을 쓰고 있는 이 가옥들은 이제 관광객을 상대로 기념품과 먹을거리를 파는 가게나 찻집,식당 등으로 바뀌었다. 140여년 전 메이지 시대가 시작되며 발길이 끊어져 폐쇄됐다가 30여년 전 새로운 관광지로 개발됐다. 후쿠시마의 전통 장난감인 목을 까딱이는 붉은 소 아카베코와 꽃이 수놓아진 양초,물고기 꼬치 구이,찹쌀떡 등을 파는 가게들을 구경하다 보면 눈과 입이 심심치 않다. 거리에서 에도시대 승려 차림의 대나무 피리를 부는 남자를 만날 수 있다. 지바현에서 왔다는 남자는 머리에 망태기를 쓰고 매일 관광객들을 즐겁게 해주는 나름의 현대식 수행을 하고 있다. 오우치주쿠에서의 식사는 소바(메밀국수)가 인기다. 시원한 무즙으로 국물을 낸 소바에는 대파가 하나씩 꽂혀 나온다. 젓가락 대신 대파로 면을 건져 먹다가 대파까지 통째로 씹어 먹어야 제맛이라고.
반다이산은 앞면과 뒷면이 다른 모습을 하고 있다. 반다이 뒤쪽을 뜻하는 우라반다이에는 고시키누마(오색호수)가 펼쳐져 있다. 화산이 폭발했을 때 무너져내린 토사가 강을 덮어 300개의 호수를 만들었다. 코발트블루 에메랄드 연두 보라 붉은색 등 서로 다른 빛깔을 띤 호수들은 다섯 색깔만 가지고는 그려내기가 불가능하다. 화산재와 지하 용출수,산성과 알칼리성 물이 만나 만들어낸 솜씨 좋은 자연이 그린 풍경이다. 호수가 단풍에 물드는 가을은 더 황홀하다. 옻나무 단풍나무 등과 억새가 가을의 색을 입고 적송과 호수의 푸르름과 어우러진다. 단풍이 절정에 이르러 새빨갛게 불타오를 때도 아름답지만 막 단풍이 들기 시작할 즈음도 좋다. 푸른 소나무와 살짝 물들기 시작하는 단풍의 대비가 투명한 호수 위에서 눈부시다. 크고 작은 호수를 따라 걷는 고시키누마 트레킹은 꼭 한번 해봐야 한다. 한 시간 정도 걸리는 간단한 코스부터 정상의 분화구에 오르는 코스까지 다양하다.
잠자리는 료칸이 좋다. 료칸은 아침과 저녁 2식이 제공되고 온천을 즐길 수 있는 일본 전통 여관이다. 저녁은 식전주로 시작해 회,튀김,버섯탕,일본산 쇠고기 등이 차례로 나온다. 양념보다는 재료 자체의 맛을 살리고 미각과 시각으로 함께 즐긴다는 일본요리답게 먹기 아까울 정도로 정성 들인 차림이다. 한식과 비교하면 푸짐함에서 밀린다는 일식이지만 열 번째쯤에야 밥이 나오는 만찬이어서 양을 조절하지 않으면 디저트는 먹기 힘들 정도다. 상을 다 받고 나면 두 시간이 훌쩍 흐른다.
긴 식사를 하는 동안 다다미방에는 낮은 다탁과 등받이 의자가 한쪽으로 치워지고 정갈한 이부자리 두 채가 나란히 깔린다. 이때부터는 느긋하게 노천탕에서 온천을 즐기며 별을 세는 것이 유일한 할 일이다. 한적한 온천지역에 있는 료칸들은 인적도 드물어 어두워진 거리에는 길고양이들만 어슬렁거린다.
후쿠시마에서 여유로움을 즐겼다면 가까운 센다이시에서는 도시의 또 다른 맛을 즐길 수 있다. 동북지방에서 가장 큰 도시인 센다이는 잘 보전된 숲과 신사,최신 쇼핑몰 등 전통과 현대가 공존한다. 센다이 중심가에는 상점들이 밀집한 아케이드 거리가 꾸며져 있어 거리 산책이 재미있다. 9월 개장한 미쓰이 아울렛 파크와 동북 최대 규모의 이온몰 나토리 에어리에서 쇼핑을 즐길 수 있다. 이온몰은 대형 마트 저스코와 미쓰코시 백화점을 함께 이용할 수 있고 센다이공항과 가까워 한국인 관광객도 많이 찾는다.
후쿠시마=김지원 기자 jiam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