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의 막대한 지원을 받는 금융업계와 건설업계가 모럴해저드(도덕적 해이)에 대한 비판에 직면하자 연봉 삭감 등 고강도 자구책 마련에 나섰다.

그러나 여전히 미흡하다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어 금융, 건설업계가 추가적인 자구책을 내놓을지 주목된다.

◇ 깎고 줄이고..긴축경영 시동


정부로부터 외환보유액의 40%인 1천억달러를 지급보증받는 은행권이 가장 발빠른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18개 국책.시중은행장들은 22일 회의를 열고 스스로 급여를 10% 깎고 직원들의 임금도 동결하도록 하겠다고 선언했다.

개별 은행별로는 우리금융그룹이 그룹과 계열사의 임원 급여 10% 삭감과 함께 조직효율화를 위해 중복점포 통폐합과 정원 동결, 예산의 축소운영 등 조치를 취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우리금융은 또 중소기업과 서민금융에 대한 지원을 확대키로 했다.

이종휘 우리은행장은 "중소기업 대출의 만기연장 시점을 내년 6월까지로 늘리고 가계대출의 만기도 내년 6월까지 연장하기로 했다"며 "대기업과 협의해 대기업 협력 중소기업을 공동 지원하는 방안을 마련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농협중앙회도 임원과 간부직원, 자회사 임원의 급여를 10% 삭감하기로 했으며 하나금융지주와 기업은행, 국민은행 등도 임원 급여를 5~15% 깎기로 했다.

증권, 보험업계도 경영합리화에 나서고 있다.

SK증권은 올해 6개 지점을 신설하려던 계획을 3개로 줄였으며 대우증권은 회사 전체 운영비용의 23%를 줄이려고 노력하고 있다.

그린손해보험이 지난주 하반기 경영전략 회의를 열고 부서별로 사업비를 최대한 절감하기로 하는 등 보험계도 분주하다.

흥국생명, 흥국쌍용화재 등도 사업비를 줄이려는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한 보험사 관계자는 "사업비를 줄여 수익을 내는 것은 보험사의 기본적인 경영 방향"이라며 "항상 하는 일이지만 경제 위기 상황을 맞아 더 신경 쓰고 있다"고 말했다.

9조 원대의 국민 세금을 지원받는 건설업계 역시 경제 위기 극복을 위한 자구노력을 펼치기로 결의했다.

대한주택공사는 내년에 임원들의 임금을 5%씩 삭감하기로 했다.

대한건설협회와 한국주택협회, 대한주택건설협회 등 건설 관련 3개 단체 회장단도 이날 건설업계 위기 대처를 위한 조찬간담회를 열고 정부의 10.21 건설대책에 호응하도록 ▲미분양 아파트의 가격인하 방안 강구를 통한 자금 확보 ▲기업 보유 부동산의 매각을 통한 유동성 확보 ▲임금 동결, 조직합리화 등 자구노력을 철저히 추진키로 했다.

◇ 전문가들 "여전히 미흡"

그러나 이러한 자구책에도 방만한 경영을 일삼은 금융업계와 건설업계의 자구책으로는 미흡하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외환위기를 맞았던 10년 전의 악몽을 잊은 채 전체 직원 수의 1%에도 못 미치는 몇몇 임원의 연봉 중 일부를 삭감하는 것으로 부실 영업을 눈감아줄 경우 호황기에 서민을 외면하다가 불황기만 되면 국민에 손을 내미는 행태가 반복될 수 있다는 지적이다.

재계 전문 사이트 재벌닷컴에 따르면 조사 대상 업종 가운데 증권사 직원이 작년 평균 7천640만 원을 받아 연봉이 가장 높았으며 은행원이 6천808만 원으로 2위를 차지하는 등 금융업 종사자의 연봉이 상대적으로 높았다.

섬유업종 직원의 연봉 2천964만 원에 비해서는 배를 넘는 수준이다.

건설업계와 보험업계는 각각 5천549만 원과 5천506만 원으로 전 업종 평균(5천170만 원)을 웃돌았다.

강운태(무소속) 의원은 이날 재정위 국감에서 "9조 원에 달하는 건설 부문 대책은 모럴 해저드의 확산과 새로운 거품(버블)을 불러올 수 있다"면서 "건설사의 토지매입과 회사채 보증 등 직접지원 방식보다는 주택 실수요자에 대한 금융지원을 확대해 건설경기를 정상화하면서도 부동산 거품을 재발시키지 않아야 한다"고 말했다.

임영호(자유선진당) 의원은 "은행들은 외환위기 이후 정부의 공적자금 덕분에 재무구조가 개선됐는데 막대한 예대마진(대출이자에서 예금이자를 뺀 것)을 통해 한 해에 수 조원씩 이익을 내면서도 리스크 관리는 뒷전이었다"면서 "외환위기 이후 달라지지 않은 은행권의 이러한 경영 행태와 이를 내버려둔 당국의 감독 실패에 대해 책임을 물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비판적 여론을 고려해 은행권이 직원의 임금 동결을 추진하고 있지만 금융노조 등이 강하게 반발하고 있어 순탄하게 진행될지 미지수다.

오문석 LG경제연구원 경제연구실장은 "정부는 지원하더라도 건설업체들이 스스로 변신하고 구조조정 등 자구노력 기울이지 않으면 퇴출이 불가피하다는 신호를 분명히 보내야 한다"며 "손쉬운 가계대출에 의존해 온 금융업계 역시 인건비 조정 등 도덕적 해이를 방지하기 위한 노력 외에도 국제금융시장에서 신뢰를 회복할 수 있는 근본적으로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서울연합뉴스) 임상수 서미숙 정성호 최현석 기자 harrison@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