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동근 <명지대 교수·경제학, 바른사회시민회의 공동대표>

美 금융위기 시장아닌 정책실패의 산물
좌파적 국가개입 빌미돼선 안돼

'시장실패'는 정부의 시장개입 논리였다. 하지만 최근 미국발 서브프라임 금융위기가 확산되면서 논의가 변질되고 있다. 일각에서는 금융위기를 시장실패로 등치시키면서,금융자본주의와 신(新)자유주의의 종말을 이야기하고 있다. 금융위기를 지렛대로 시장경제를 공격하고 있는 것이다.

미국발 금융위기가 금융자본주의의 종언을 이야기할 만큼 시스템의 오작동에서 비롯된 문제인가. 금융위기는 부동산 거품 붕괴에서 비롯된 것이다. 월가의 방만한 파생금융상품 운용이 부실을 증폭시킨 것은 사실이지만 위기의 진원지는 아니다. '계기'와 '원인'은 구분돼야 한다. 신용등급이 낮은 취약계층에게 주택담보대출을 엄격하게 제한했다면,서브프라임 상환 연체율을 급작스럽게 높인 실물경기 위축이 없었다면 금융위기는 발발하지 않았을 것이다. 따라서 금융부실은 종속변수에 불과하다. 월가의 탐욕과 도덕적 해이를 부정할 수는 없지만,이를 위기의 원인으로 내몰 수는 없다.

위기의 본질은 왜 부동산 시장에 거품이 만들어졌는가 하는 것이다. 과잉유동성이 그 단초를 제공했다. IT(정보기술) 버블 붕괴와 9·11테러에 따른 경기침체를 막기 위해 장기간 저금리를 유지했기 때문이다. 이는 '선제적' 정책대응으로 정당화됐다. 모든 현상에는 주기가 있다. 경제도 마찬가지다. 경기하강은 경제의 '숨고르기'이다. 하강이라는 '휴식'을 통해 경기는 자연스럽게 회복된다. 선제적 정책대응은 경제의 숨고르기 주기를 거스르는 역리(逆理)였다. 그 같은 역리의 중심에 '그린스펀'이 있었다.

간과해서 안 될 또 다른 요인은 '포퓰리즘'이다. 미국도 포퓰리즘에서 자유롭지 않았다. 금융소외계층도 주택을 소유할 권리를 가져야 한다는 것이다. 대출 부적격자에게 대출기회가 주어졌고,모기지 은행은 이를 마다하지 않았다. 주택가격 상승 국면에서 담보대출은 '안전한 자산'으로 여겨졌다. 하지만 담보부동산의 가격상승을 '전제'로 한 금융취약 계층에 대한 대출은 처음부터 부실화의 위험을 안고 있었다.

이렇듯 금융위기는 '정책실패'의 산물이다. 경기하강을 용인하지 않겠다는 정책당국의 오만이 화를 부른 것이다. 시장기능에 의한 웬만한 경기하강은 수용했어야 한다. 저금리로 경기를 지탱할 수 없기 때문이다. 몸살을 앓고 끝났을 일을 저금리로 오히려 병을 키운 셈이다. 사회적 약자계층에 대한 온정적 포퓰리즘도 금융위기를 초래한 근저의 요인이다. 금융위기의 최대 피해자는 무리해서 주택을 구입한 금융소외계층이다. 온정주의의 폐해는 사회적 약자가 짊어지게 돼 있다. 또한 '위험의 전가'를 '위험의 해소'로 착시(錯視)한 월가의 도덕적 해이도 문제를 키웠다. 월가의 성과중심 보수체계 왜곡도 탐욕을 부추겼다. 파생상품에 대한 건전성 규제 불비(不備)도 파생금융상품의 무한 증식을 가능하게 한 정책실패 요인이 아닐 수 없다.

시장은 시장원칙에 반하는 개입과 역리에 따른 부작용을 무한대로 감내하지 않는다. 이 같은 점에서 시장규율은 무엇이 문제인가를 선별해 내는 기능을 수행한다. 시장을 억압하면 작은 문제를 크게 키우게 된다. 금융위기를 '시장실패'와 등치시키는 것은 인식오류다. 금융위기는 정책실패에 대한 '시장의 응징'이기 때문에,오히려 시장이 작동한다는 증거로 보는 것이 맞다. 시장경제는 정책실패를 통해 튼실해진다. 위기를 통해 위기를 초래하게 한 제도적 요인을 적출하고 경제주체의 의식을 바꿀 수 있기 때문이다. 금융위기를 좌파적 국가개입주의 실지 회복의 기회로 삼을 일은 못된다. 그리고 파생금융상품의 유용성도 폄훼돼서는 안 된다. 시장은 위기를 통해 튼실해지고 진화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