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뜨는조직 지는조직] (7) 공부의 비밀 ‥ 포스코 강판판매 그룹엔 "매일 30분 스터디…시야가 확 트였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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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게 다 우리 잘못이다. 그렇게 변하라고 해도 안 되니까 회사가 이러는 거 아니겠어."
2007년 12월 말 포스코 API강판판매실(현 API강판판매그룹) 송년회.유영태 강판판매팀장(차장)은 쓴 소주잔을 연신 들이키고 있었다. 팀장과 팀제를 없애고 그룹장-그룹원으로 조직을 전면 개편한다는 소식이 들어왔기 때문이다. 유 차장은 졸지에 팀장으로서의 직위와 권한을 내놓고 일반 직원으로 강등(?)됐다. 포스코가 국내 기업으로는 최초로 사내 팀장 직을 없애 버리기로 한 것은 팀장들의 역할이 기대에 미치지 못한다는 판단 때문이었다. 유 차장의 설명은 이렇다.
"회사는 '일하는 팀장'을 원했어요. 팀원들을 통솔하는 일도 중요하지만 자신의 고유 업무를 갖고 팀장 직을 수행하라는 것이었죠.야구로 치면 '플레잉 코치'라고나 할까요. 그런데 회사가 보기엔 팀장들이 전혀 말귀를 못 알아듣는 거예요. 창가에 그대로 앉아 손님이나 맞이하면서 결재만 하고 있었던 거죠."
이런 연유로 유 차장을 비롯한 포스코 내 수백 명의 팀장들이 창가 자리를 내놓고 사무실 한가운데로 나오게 된 것이다. 그렇다면 그로부터 9개월여가 지난 지금 포스코에선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을까. 유 차장이 소속된 API강판판매그룹을 찾아 봤다.
▶▶ 선ㆍ후배 간 업무보완 '페어제'의 성공적 정착
이 그룹은 3년이 채 되지 않은 신생 조직이다. 해외 대형 에너지기업들의 송유관 구축사업 등에 참여해 강판을 판매한다. 2006년 1월 API강판판매실 강판판매팀ㆍ강판판매기획팀 2개팀 14명으로 시작한 이 미니 조직은 올해 1월 '강판판매그룹'이란 명칭으로 바뀌었다. 작년 5200억원의 매출을 올렸고 올해 7000억원을 예상하고 있다.
이 그룹의 황인재 대리(32)는 장난수 대리(33)보다 불과 한 살이 적다. 하지만 장 대리는 황 대리의 엄연한 '코칭' 선배다. API강판판매그룹이 포스코 내에서 유일하게 운영하고 있는 페어(pair)제에 따른 것이다. 페어제는 선ㆍ후배 직원이 1 대 1로 연결돼 상호 업무를 보완하고 회의와 출장 등 업무의 모든 동선을 같이하는 제도다.
금속공학과 출신 엔지니어 황 대리는 "기획과 계약 업무를 동시에 배우면서 스스로 많이 성장했다는 느낌을 갖는다"고 말했다. 특히 북미 모 송유관 프로젝트에 참여하면서 구체적인 정보 수집 방법과 활용 방법을 터득했고 가격 협상에까지 나설 수 있게 된 것은 모두 페어제가 가져다 준 역량 때문이었다고 평했다.
▶▶ 컨설팅ㆍ합련으로 문제점 파악
갑자기 팀제를 없앤다고 해서 단기에 조직 운영의 '소프트웨어'까지 달라지기는 어렵다. 하지만 변화하지 않고는 조직의 존재 이유를 설득시키지 못하는 것이 포스코의 분위기다. 이영우 그룹장은 지난 1월 주말에도 계속 출근해 머리를 쥐어짰다. 대체 뭘 어떻게 해야 하나? 그룹제가 회사 방침으로 정해진 이상 좌고우면할 겨를이 없었다. 20명짜리 소조직이긴 하지만 문제점을 파악하기 위해 컨설팅을 받기로 했다. 그 결과 △그룹의 양대 축인 판매-기획 간 소통이 제대로 안 되고 △중복 업무가 많으며 △직원들의 업무역량 향상이 더디게 진행된다는 문제점이 도출됐다. API강판판매그룹은 지난 3월 기획과 판매 업무를 통합시킨 뒤 경기도 양평으로 합숙 훈련을 떠났다. 문제 해결을 위한 워크숍이었다.
GE플라스틱에서 3년 동안 일하다가 포스코로 옮겨 온 신민영 대리는 "무한경쟁 체제인 외국 기업에서는 몸으로 부대끼는 스킨십이 없었는데 그때 합숙 훈련이 참 좋았던 것 같다"고 말했다.
합숙기간 동안 '멍석'을 깔아 주니 그룹원들의 불만이 봇물처럼 터져 나왔다. 정보 공유가 안 되니 의견 교환의 기회나 필요성이 적어지고,쓸데없는 대면 보고가 업무 효율성을 떨어뜨린다는 지적이 나왔다. 결국 해결책은 '고급 정보와 노하우의 효율적인 공유 및 전파'로 압축됐다. 강판판매그룹만의 제도인 '페어'제와 '30 스터디'제가 도입된 것도 이때문이다.
▶▶ 3년 미만 신입 조직,숙련 조직으로 탈바꿈
2006년 1월 입사한 그룹의 막내 장재석 사원은 출근 시간을 30분 앞당겨 집중 스터디를 진행하는 '30 스터디'의 덕을 톡톡히 본 케이스다. 장 사원은 "예전 실 체제에서는 판매만 했었는데 그룹 체제 이후 기획 업무를 맡게 되면서 시야가 훨씬 넓어졌다"고 말했다. 장 사원은 최근 API강판소재 해외 구매기업인 W사에 대해 '소프트랜딩 차원에서 강판을 계속 공급하되 관련 경쟁사와의 연대를 통한 장기적인 위협이 현실화될 때는 공급을 즉시 중단해야 한다'는 정밀한 보고서를 작성해 호평받았다.
김원중 사원은 "처음에는 30분 일찍 회사에 나오려니 죽을 맛이었는데 이제는 그 30분이 정말 중요해졌다"고 말했다. '코일화학 성분치 분석' '포스코가 개발한 세계 최초 상용화 코일' 등 업무 관련 지식에 관해서는 거의 박사급 문헌을 뒤질 정도가 됐다는 설명이다.
강판판매그룹은 직원들 중 대다수가 근속 연수 3년 미만인 경력직 또는 신입 사원으로 이뤄져 있다. 하지만 그룹은 포스코가 전사적으로 활용하고 있는 학습동아리 시스템과 독자적으로 개발한 페어제,30스터디제 등을 통해 숙련 조직으로 거듭나고 있다. 스스로 학습하는 편제의 중요성이 팀과 조직의 발전에 얼마나 중요한지 알려 주는 대목이다.
글=이해성 기자 ih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