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라리 증시 문을 닫자."

코스피지수가 장중에 1200선이 무너진 10일 논리적인 설명이 통하지 않는 '묻지마' 투매 물량이 쏟아지자 증시 일각에서는 이 같은 목소리까지 나왔다.

전문가들조차 "외환위기 시절로 되돌아간 것 같다"며 고개를 내저었다.
전국 증권사 객장에는 개인투자자는 물론 창구 직원들도 시퍼렇게 물든 시세표 앞에서 할 말을 잃고 딱딱하게 얼어붙어 싸늘한 공포 분위기가 감돌았다.

이정아 한국투자증권 마포지점장은 "한마디로 공황 상태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저가 매수세가 조금씩 들어왔는데 오늘은 자금 유입이 뚝 끊겼다"고 침울해했다. 이 지점장은 "시장이 열리자마자 주가가 폭락하는 바람에 꼼짝 못하고 당할 수밖에 없었다"며 "지수가 1400선 정도일 때만 해도 주식을 사겠다는 고객이 일부 있었는데 지금은 간혹 물타기에 나서는 경우를 제외하곤 거래 자체가 중단된 상태"라고 전했다. 그는 "주식형펀드 가입자 중 손실을 견디지 못한 투자자들은 돈을 인출해 확정금리를 주는 환매조건부채권(RP)이나 소매채권으로 눈을 돌리고 있다"고 말했다.

최안호 동양종금증권 금융센터신사지점장은 "'백약이 무효'라고 포기하는 투자자가 많아 주가 폭락에도 객장은 오히려 동요 없이 조용했다"며 분위기를 전했다. 최 지점장은 "주식은 그나마 기다리다 보면 언젠가 반등할 수 있을 것이란 희망이나 있지만 주가연계증권(ELS)처럼 만기가 되면 자동으로 손실이 확정되는 상품의 경우엔 만회할 기회가 없어 목돈을 털어넣은 고객들은 충격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지방 객장도 공포 분위기다. 조상권 현대증권 대전지점장은 "어제가 바닥인가 했는데 아침에 눈 떠 보니 뉴욕 증시가 대폭락해 어이가 없었다"면서 "조금만 기다리면 기회가 올 거라고 고객들을 설득했던 직원들도 무척 힘들어한다"고 토로했다.

장인환 KTB자산운용 사장은 "지금은 이성적으로 판단할 수 없는 상황까지 왔다"면서 "가격을 불문하고 팔겠다는 '묻지마' 투매가 벌어지는 만큼 투자자 보호를 위해서라도 일정 기간 시장의 문을 닫는 등 특단의 조치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이윤학 우리투자증권 연구위원은 "외환위기 때로 되돌아간 것 같다"며 "금융위기의 불씨가 사그라들더라도 경기 침체와 기업이익 둔화라는 '2라운드'가 기다리고 있어 더 큰 문제"라고 우려했다.

글=박해영/장경영 기자.사진=허문찬 기자 bon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