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민영 의료보험 상품의 보장 한도를 제한하는 문제를 놓고 '장고'에 들어갔다. 어떻게든 제한해야 가입자들의 과잉 의료가 줄어든다는 판단 아래 최대한 업계와 가입자 반발을 낮추기 위해 구체적 방안을 짜내기 위해 고민하고 있는 것이다. 생명보험 업계와 손해보험 업계는 정부안이 무엇일지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내용이 어떻게 나오느냐에 따라 희비가 크게 갈릴 수 있어서다. 생·손보 업계는 손보업계의 독점 상품이던 민영의보 시장에 생보사들이 올 4월부터 진출하면서 갈등을 빚어 왔다.

정부 부처,민영의보 제한 합의

보건복지부는 민영의보 가입자에 대한 과잉 진료가 건강보험 적자를 초래한다며 본인부담금 보상 한도를 70~80% 수준으로 낮추는 방안을 추진해왔다. 본인이 돈을 내고 진료를 받는다면 과잉 진료가 줄어들 것이란 생각이다. 현재는 손보사의 실손형 민영의보의 경우 건강보험을 적용받은 뒤 본인이 부담해야 하는 의료비를 100% 보상해준다.

복지부와 금융위원회,기획재정부 등 관련 정부 부처는 민영의보 제한 방침을 확정지은 가운데 구체적으로 어떻게 제한할지 논의하고 있는 상황이다.

금융위 고위 관계자는 "민영의보 상품을 제한할 필요성에 대해선 부처 간에 공감대가 이뤄졌다"며 "다만 업계와 가계에 미칠 영향을 고려해 일률적으로 자기부담금을 20%로 하는 등의 획일적 규제는 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지난달 22일 국회에서 열린 관련 공청회에서 이혜훈 의원도 "현재 보험업계 내부에서 괴담처럼 떠도는 것처럼 자기부담금 비율을 20%로 일괄 적용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이는 손보업계가 반발하고 있는 데다 본인부담금 보상 한도를 낮출 경우 본인부담금이 높은 질병에 결렸을 때 중산층·저소득층의 부담을 덜어줄 만한 사회적 장치가 없어진다는 점도 문제기 때문이다. 정부는 환자 개개인의 조건에 따라 보험업계와 환자 간 상호 합의와 계약으로 자기부담금 등을 정하는 방안을 고려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독일 영국 프랑스 네덜란드 등 선진국에서도 도덕적 해이를 막기 위해 자기부담금을 의무 설정하고 있다. 다만 일괄적으로 범위와 적용 방법을 정부가 제시하기보다는 보험사 자율에 맡기는 추세다. 예를 들어 프랑스에선 상징적으로 최소한 1유로 이상을 환자가 부담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손보업계도 보장 범위는 보험사 자율에 맡기면서 의료비의 일부를 가입자가 부담하는 '자기부담금제'를 가입자 스스로 선택할 수 있게 하자는 대안을 주장해왔다.

생·손보 입장차 뚜렷

·손보 업계는 민영의보 문제를 놓고 치열한 신경전을 벌이고 있다. 손보업계는 사장단이 모여 정부의 민영의보 제한 방침에 "국민의 의료비 부담이 늘어날 것"이라며 반대 성명을 발표하는 등 반발하고 있다.

이는 보장 한도가 축소되면 주력 상품의 하나인 민영의보의 경쟁력이 사라질 위기에 처하기 때문이다. 2007회계연도 기준 손보시장 32조원 중 실손형 상품의 비중은 37.4%를 차지한다. 자동차보험(34.5%),일반보험(10.8%)보다 더 크다. 특히 자동차보험은 공적 성격이 강해 작년에도 520억원(3.8%)의 손실이 나는 등 이익 창출에 한계가 있다. 실손형 민영의보 상품이 손보업계를 먹여 살려주는 상품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런 상황에서 가입자 부담이 늘면 가입 자체가 줄어들 것으로 보인다. 특히 보장 범위를 80%로 축소할 경우 생보 상품과의 차별성이 사라져 경쟁력이 떨어진다. 현재 삼성생명 등 생보사도 지난 5월부터 실손형 시장에 뛰어들어 의료비의 80%를 보장하는 상품을 내놓은 상황이다. 생보업계는 특정 질병에 걸렸을 때 미리 약정한 액수를 주는 정액형 민영의보만 팔다가 지난 5월 후발 주자로 시장에 뛰어들었다. 노하우도,통계도 없다 보니 실비의 80%만 주는 상품을 내놨다.

이에 따라 생보업계는 원칙적으로 '민영의보 제한' 방침에 대해 중립을 지키는 가운데 속내는 정부의 규제 방침에 동조하는 양상이다. 한 대형 생보사 관계자는 "정부가 보장 한도를 줄이겠다는 것은 민영 의보가 건강보험의 재정을 악화시킨다는 판단 때문 아니겠느냐"며 "우리는 정부가 현행대로 하든,70∼80%로 하든 그대로 따른다는 입장"이라고 말했다. 생·손보 업계는 지난해 상법 개정 때도 손보사 연금 판매를 허용하는 방안을 두고 대립각을 세운 바 있다. 보험업계 관계자는 "보험시장 전체의 성장이 정체된 가운데 생·손보로 갈린 영역을 허물고 조금씩 빼앗으려는 움직임이 치열하다"고 말했다.

김현석 기자 realis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