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가 있는 갤러리] 성선경 '수국(水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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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만하면 나이도 먹을 만큼 먹었다고
상추쌈을 한 주먹 싸서 입이 찢어져라
우겨 넣어도 밉지 않다.
남편의 남색 남방을 걸친 것 같기도 하고
딸아이 청바지를 뺏어 입은 것 같기도 한데
어느 화단에서나 잘 어울리는 꽃
(…)
빨래판을 차고 앉으면
빨랫감보다 더 큰 엉덩이로
한쪽 베란다가 꽉 차지만
내 품이 너는 것보다 빨리 크는
아이들이 그저 고맙다고
수건을 둘러쓰고 벅벅거리며
잘 늙어가는 아내.
성선경 '수국(水菊)'부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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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짓고 청소하고 빨래하느라 종종걸음으로 집안을 휘젓고 다니다가 발바닥이 새까매지곤 한다.학교에서 밤늦게 돌아오는 아이를 기다리다 거실 바닥에 널부러져 잠드는 것도 다반사다.지지고 볶고 하면서 세월이 흘러 어느덧 젊음을 잃었다.늘어난 뱃살을 줄이려 몸부림치다가 늘 실패하고,화가 치밀어 퉁퉁 부어 있다가도 끼니때가 되면 달그락거리며 밥을 차려내는 사람.아무 화단에나 잘 어울리는 수국 같이 세상의 평균 어디쯤에 버티고 서서,아련하게 늙어가는 그 사람.아내.
이정환 문화부장 jh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