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충구 유닉스전자 회장의 '드라이 인생' 30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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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충구 유닉스전자 회장(67)은 헤어 드라이기라고 하면 자다가도 눈이 떠지는 사람이다. 1978년 자본금 1000만원,직원 6명으로 설립한 회사를 30년 외길을 걸어 국내 1위이자 세계 3위의 드라이기 전문업체로 일궈냈다.
오는 6일 창립 30주년을 맞는 이 회장은 올해 유닉스전자의 글로벌 시장 입지를 더욱 다질 생각이라고 말했다. 지난 8월 미국 힐튼가의 상속녀로 유명한 패리스 힐튼과 손잡고 내놓은 프리미엄 제품 '패리스 힐튼 드라이기'가 승부수라고 강조했다.
그는 미국 10대들의 패션 아이콘으로 불리는 힐튼과는 '운이 좋아' 사업을 같이하게 됐다고 했다. 올초 미국에서 열린 이미용기기 박람회에 들렀던 힐튼 측 인사가 유닉스전자 부스를 둘러본 뒤 "만나보자"고 연락을 해오면서 양측 간 논의가 시작됐다. 평소 이미용기기에 관심이 있던 힐튼은 지난 6월 유닉스전자 박인성 사장을 집으로 초대,구체적 제안을 했다. 몇 차례 협상 끝에 지난 8월 패리스힐튼 드라이기를 만들기로 했다. 이 회장은 "언론 보도 등에서 여러 소문을 몰고 다니는 것과 달리 직접 만나본 힐튼은 사업 마인드가 강한 친절한 여성이었다"고 말했다.
이 회장과 헤어 드라이기와의 인연은 1977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성균관대에서 생명공학을 전공한 이 회장은 1965년 호남전기에 입사,상무까지 올랐다. '내 사업을 한번 해보자'는 생각에 회사를 그만두고 일본을 오가며 당시 국내에 없는 물건을 사다 파는 보따리 장사를 했다. 그때 눈에 들어온 것이 당시 일본에서 인기를 끌던 '구루구루'드라이기.
이거다 싶어 1978년 회사를 차렸다. 처음엔 물건을 가져다 팔았지만 '제조업 출신의 피가 흐른 탓'에 직접 드라이기를 만들기로 했다. 1984년 일본 사토사와 합작사를 세웠다. 인두를 달궈 머리를 마는 고데기에 익숙한 국내 소비자들에게 드라이기는 처음에는 낯선 제품이었다. 그는 드라이기를 들고 여자들이 많이 일하는 공장을 돌며 머리를 매만져주며 장사를 했다.
드라이기로 명성을 날리기 시작한 것은 그로부터 10여년 뒤였다. 뜨거운 바람에 머릿결이 상하는 것을 막기 위해 이온 드라이기를 세계 최초로 내놨다. 이온 드라이기 덕분에 유닉스전자는 필립스, 파나소닉 등 유명 외국업체를 제치고 국내 드라이기 업계 1위에 올랐다. 전자파를 차단한 드라이기로 수출에도 탄력이 붙어 지난해엔 연매출 1000억원을 넘어섰다.
이 회장은 아직도 신제품이 나오면 제일 먼저 집에 가져다 놓고 써본다고 했다. "품질이 최고가 아니면 소비자들이 외면한다"는 철학 때문이다. 10년을 쓰다 드라이기가 망가졌다고 들고오는 소비자들은 그에게 '귀한 손님'이다. 새 물건으로 바꿔주고 망가진 물건은 따로 보관해 둔다. 그래서 장사 되겠느냐고 물었더니 이 회장은 오히려 "10년간 물건을 잘 써 준 게 오히려 고맙지 않느냐"고 받아쳤다.
김현예 기자 yeah@hankyung.com
오는 6일 창립 30주년을 맞는 이 회장은 올해 유닉스전자의 글로벌 시장 입지를 더욱 다질 생각이라고 말했다. 지난 8월 미국 힐튼가의 상속녀로 유명한 패리스 힐튼과 손잡고 내놓은 프리미엄 제품 '패리스 힐튼 드라이기'가 승부수라고 강조했다.
그는 미국 10대들의 패션 아이콘으로 불리는 힐튼과는 '운이 좋아' 사업을 같이하게 됐다고 했다. 올초 미국에서 열린 이미용기기 박람회에 들렀던 힐튼 측 인사가 유닉스전자 부스를 둘러본 뒤 "만나보자"고 연락을 해오면서 양측 간 논의가 시작됐다. 평소 이미용기기에 관심이 있던 힐튼은 지난 6월 유닉스전자 박인성 사장을 집으로 초대,구체적 제안을 했다. 몇 차례 협상 끝에 지난 8월 패리스힐튼 드라이기를 만들기로 했다. 이 회장은 "언론 보도 등에서 여러 소문을 몰고 다니는 것과 달리 직접 만나본 힐튼은 사업 마인드가 강한 친절한 여성이었다"고 말했다.
이 회장과 헤어 드라이기와의 인연은 1977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성균관대에서 생명공학을 전공한 이 회장은 1965년 호남전기에 입사,상무까지 올랐다. '내 사업을 한번 해보자'는 생각에 회사를 그만두고 일본을 오가며 당시 국내에 없는 물건을 사다 파는 보따리 장사를 했다. 그때 눈에 들어온 것이 당시 일본에서 인기를 끌던 '구루구루'드라이기.
이거다 싶어 1978년 회사를 차렸다. 처음엔 물건을 가져다 팔았지만 '제조업 출신의 피가 흐른 탓'에 직접 드라이기를 만들기로 했다. 1984년 일본 사토사와 합작사를 세웠다. 인두를 달궈 머리를 마는 고데기에 익숙한 국내 소비자들에게 드라이기는 처음에는 낯선 제품이었다. 그는 드라이기를 들고 여자들이 많이 일하는 공장을 돌며 머리를 매만져주며 장사를 했다.
드라이기로 명성을 날리기 시작한 것은 그로부터 10여년 뒤였다. 뜨거운 바람에 머릿결이 상하는 것을 막기 위해 이온 드라이기를 세계 최초로 내놨다. 이온 드라이기 덕분에 유닉스전자는 필립스, 파나소닉 등 유명 외국업체를 제치고 국내 드라이기 업계 1위에 올랐다. 전자파를 차단한 드라이기로 수출에도 탄력이 붙어 지난해엔 연매출 1000억원을 넘어섰다.
이 회장은 아직도 신제품이 나오면 제일 먼저 집에 가져다 놓고 써본다고 했다. "품질이 최고가 아니면 소비자들이 외면한다"는 철학 때문이다. 10년을 쓰다 드라이기가 망가졌다고 들고오는 소비자들은 그에게 '귀한 손님'이다. 새 물건으로 바꿔주고 망가진 물건은 따로 보관해 둔다. 그래서 장사 되겠느냐고 물었더니 이 회장은 오히려 "10년간 물건을 잘 써 준 게 오히려 고맙지 않느냐"고 받아쳤다.
김현예 기자 yea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