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은행에 왜 직접 외화대출하나] "달러가뭄에 은행ㆍ기업 모두 쓰러질 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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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가 은행들에 사실상 직접적으로 외화대출을 하기로 한 것은 '제2의 외환위기'가 우려될 정도로 금융권의 외화자금난이 심각하다는 판단에 따른 것이다. 하지만 글로벌 신용경색이 언제 끝날지 모르는 상황에서 외환보유액을 최대한 아껴야 한다는 지적도 만만치 않아 논란이 예상된다.
◆왜 직접 대출하나
지난달 중순 미국 투자은행인 리먼브러더스가 파산보호를 신청한 이후 은행권은 극심한 '달러 가뭄'에 시달렸다. 은행들은 "1개월짜리나 1년짜리 달러자금을 구하지 못해 오버나이트(overnight·하루짜리 달러차입)로 겨우 연명하고 있다"고 비명을 질렀다.
이에 따라 정부가 지난달 26일 외환스와프시장에 100억달러 이상의 외환을 풀었지만 달러 가뭄은 여전히 풀리지 않고 있다. 외화자금 사정을 보여주는 스와프포인트(선물환율-현물환율)도 정부의 개입 발표 이후 잠시 개선되는 듯하다 이후 다시 악화됐다. 정부가 2일 은행권에 '직접 외화대출'을 선언한 것은 이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달러 경색을 풀 수 없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외환스와프 시장의 경우 은행들이 달러를 빌리는 대신 원화를 담보로 맡겨야 하는 관계로 부담을 느낀 점도 정부가 직접 대출에 나선 배경 중 하나다.
◆외환보유액 충분한가
문제는 외환보유액이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9월 말 외환보유액은 2397억달러로 전월 대비 35억달러 줄었다. 6개월째 감소세다. 최고치였던 지난 3월과 비교하면 245억달러나 줄었다.
현물 외환시장 개입과 외환스와프시장 개입,은행에 대한 직접대출까지 이어지면서 외환보유액은 앞으로 더 줄어들 가능성이 크다. 일각에선 1년 안에 갚아야 할 유동외채가 지난 6월 말 현재 2223억달러인 점을 감안하면 가용 외환보유액은 170억달러가량에 불과하다는 얘기까지 나오고 있다. 금융계 관계자는 "환율이 오르고 기업들이 달러 자금난을 호소한다고 외환보유액을 함부로 썼다간 정말 위기 상황이 닥쳤을 때 큰일이 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박병원 청와대 경제수석은 이날 한 라디오 방송에 출연해 "외환보유액은 쌓아놓기만 하려고 있는 것이 아니다"며 "너무 쓴 것은 아니니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고 말했다. 한국은행도 가용 외환이 170억달러가량에 불과하다는 지적에 대해 "외환보유액 자체가 모두 가용 외환"이라고 반박했다. 또 "국내 은행들은 유동외채보다 많은 유동외화자산을 가지고 있다"고 밝혔다. 외환보유액에서 유동외채를 빼고 가용 외환을 구하는 방식은 유동외화자산을 '0'으로 잘못 가정한데서 비롯된 것으로 논리적으로 말이 안된다는 것이다.
◆이것으로 풀리나
정부의 50억달러 직접 대출에 대해 은행권에서는 "달러 가뭄을 푸는 최선의 방법"이라며 환영하는 분위기지만 전 세계 유동성이 급속히 메말라가는 상황에서 정부가 외환보유액을 푼다고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니라는 지적이 많다. 은행과 기업,심지어 일부 개인들까지 달러 확보에 나서고 있는 상황에서 정부의 시장개입은 한계가 있다는 것이다.
금융계 관계자는 "외환위기 당시 은행에 외화를 직접 대출했다가 제때 돌려받지 못한 것이 외환위기를 촉발시킨 한 원인"이라며 은행 직접대출의 위험성을 지적하기도 했다. 한국은행도 그동안 '외화 직접 대출은 은행권의 모럴해저드를 부추길 수 있다'고 말해왔다. 은행이 해외에서 차입하거나 국내 외환스와프시장에서 조달해야지 정부에 직접 손을 벌려서는 안 된다는 논리다.
주용석 기자 hohobo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