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 캐나다 남미 등지도 미국 하원의 구제금융법안 부결 여파로 증시가 폭락하는 등 극심한 혼란에 빠져들고 있다.

각국 정부는 일제히 자국 부실은행들에 대한 긴급 구제와 국유화 조치 등을 발표하며 진화에 나섰지만 공황 상태에 빠진 투자 심리를 막기는 역부족이었다. 특히 금융회사 부도 공포가 확산되면서 은행주가 곤두박질쳤다.

아이슬란드 정부는 29일(현지시간) 세 번째로 큰 은행인 글리트니르은행을 국유화하는 조건으로 8억7000만달러를 긴급 지원했다. 영국 정부는 모기지(주택담보대출) 은행인 브래드포드 앤드 빙글리(B&B)의 부실 대출 910억달러 등을 떠안고 국유화하기로 했다.

또 벨기에와 네덜란드 및 룩셈부르크 정부가 역내 최대 금융회사인 포르티스를 구제하기 위해 모두 112억유로(163억달러)를 긴급 투입하기로 한 데 이어 벨기에와 프랑스 합작은행인 덱시아에도 공적자금 64억유로(92억달러)가 수혈될 예정이다.

하지만 또다시 불거진 미국발 악재는 증시를 속절없이 무너뜨렸다. 이날 영국 FTSE100 지수는 5.3% 떨어진 4818.77로 장을 마감했다. 런던증시의 FTSE100지수는 30일 개장 직후 전날보다 21.8포인트 오른 4840.6에 거래됐다. 전날 프랑스 CAC40 주가지수는 심리적 지지선인 4000이 붕괴되면서 3953.48(-5.04%)로 거래를 마쳤고,독일 DAX 지수도 4.23% 하락한 5807.08로 장을 끝냈다.

특히 은행주가 직격탄을 맞았다. 아일랜드의 앵글로-아이리시은행 주가는 이날 하루 45%나 떨어졌으며,벨기에 네덜란드 룩셈부르크 등이 긴급 자금을 투입하기로 한 포르티스은행은 24% 하락했다. 시장에서는 "미 하원의 구제금융안 부결은 공황 상태의 투자 심리에 기름을 부은 격"이라며 "주가 폭락은 유동성 고갈로 이어져 줄도산에 이르는 악순환을 부채질할 것"이라고 우려했다.

캐나다 증시도 '피의 월요일'을 맛봐야 했다. 캐나다 토론토 증시는 이날 하루 지수 낙폭으로 사상 최대인 840.93포인트(6.93%) 떨어지며 12,258.07로 장을 마쳤다. 현지 언론들은 "유혈이 낭자한 상황"이라며 "한 줄기 희망으로 여겼던 구제금융안이 부결된 만큼 시장이 충격에 휩싸이는 것은 당연하다"고 전했다.

충격파는 중남미 금융시장까지 퍼졌다. 브라질 보베스파 지수는 이날 10% 이상 폭락하자 오후 2시49분부터 30분간 주식 거래를 일시 중단하는 서킷브레이커를 발동하기도 했다. 그러나 서킷브레이커 발동 이후에도 하락세를 멈추지 않으면서 한때 13.75%까지 떨어졌다가 마감을 앞두고 회복세로 돌아서면서 하락률을 10% 이내로 줄였다. 브라질 헤알화 가치는 이날 6% 떨어진 달러당 1.964헤알에 거래돼 2002년 이후 6년 만의 최저치를 나타냈다.

멕시코 증시는 6.4% 하락하며 23,995.67로 마감됐으며,아르헨티나 증시는 8.7% 떨어진 1545.45로 거래를 마쳤다. 시장 전문가들은 "미국발 금융위기가 커지면서 외국인 투자자들이 이머징마켓을 떠나고 있다"며 "그동안 영향에서 다소 벗어나 있던 중남미 증시도 서서히 휘청거리기 시작했다"고 분석했다.

안정락 기자 jran@hankyung.com